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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여행자 ‘오후 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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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여행자 ‘오후 네 시’

입력
2011.03.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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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불구 여자랑 결혼해서 미쳤다는 건 구실일 뿐이야. 당신이 그 여자와 결혼한 건 당신 안에 그 여자를 당신의 반쪽으로 여기는 멍청이가 있었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당신 부부는 천생연분이었단 말이야! 당신들처럼 잘 어울리는 부부는 본 적이 없어.”

치매에 걸려 구더기까지도 스스럼없이 먹어 치우는 부인에 노의사는 결국 삶의 끈을 놓아버리게 하려 한다. 그리곤 낌새가 이상해 그 집을 찾은 은퇴 교사 에밀이 절규하며 하는 말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은퇴 교사 부부와 치매 노인 부부가 정 넘치는 이웃이 돼 평온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극단 여행자의 ‘오후 네 시’는 담담한 일상의 풍경 속에 내장돼 있는 폭력과 잔인함을 세련된 연출의 힘으로 보여 준다.

상냥하고 교양 넘치며 항상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은퇴 라틴어 교사 부부에게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의사라며 한 노인이 불쑥 찾아온다. 아무 말 않고 뚱하게 있는 그의 존재에 부부는 몹시 당혹스럽다. 무대에는 그 같은 방문이 여덟 차례 이뤄진다. 이상한 침묵과 느닷없는 행동에 객석까지 불편하다. 말 안 되는 상황이 천연덕스레 펼쳐지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객석은 드디어 큭큭거리며 조심스레 웃음을 흘려보낸다.

교사의 심사가 뒤틀릴수록 그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객석은 실소를 참기 힘들다. 극적 아이러니다. “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뻔뻔한 인간도 아니시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짓을 꾸준히 계속할 만큼 멍청한 인간도 절대 아니죠.”

건조할 수도 있을 무대지만 연출의 상상력은 풍성하다. 한 여성을 4명의 남자가 연기하는 ‘말리린 먼로의 삶과 죽음’으로 대학로 입성을 성공적으로 알린 여성 연출가 조최효정(34)씨의 섬세한 시선 덕에 자칫 관념에 치우칠 수도 있었을 무대가 생명을 얻는다. 그 원천은 물론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희곡(1999)이다. 연출자는 “그는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우화적으로 비판하는 작가의 문체와 세상을 보는 독특한 시각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갖고 노숙자, 소외 계층 등을 이미지 극 방식으로 다루고 싶다”고 한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사회 제도와 인간으로부터 소외돼 비정상적 삶의 방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얘기가 바로 이 작품이고, 김은희_전중용 등 커플로 분한 네 배우를 뚜렷한 심상으로 남긴 주체가 바로 연출자이겠거니 싶다. 6일까지 정보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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