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식전 산책 마치고 돌아오다가
칡잎과 찔레 가지에 친 거미줄을 보았는데요
그게 참 예술입디다
들고 있던 칡꽃 하나
아나 받아라, 향(香)이 죽인다
던져주었더니만
칡잎 뒤에 숨어 있던 쥔 양반
조르륵 내려와 보곤 다짜고짜
이런 시벌헐, 시벌헐
둘레를 단박에 오려내어
톡!
떨어뜨리고는 제 왔던 자리로 식식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식전 댓바람에 꽃놀음이 다 무어야?
일생일대 가장 큰 모욕을 당한 자의 표정으로
저의 얼굴을 동그랗게 오려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퉤에!
끈적한 침을 뱉어놓는 것이었습니다
● 아주 어렸을 때, 새끼손가락만한 번데기를 잡아서 놀았지요. 무슨 벌레의 번데기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그 번데기를 동서남북이라 불렀지요. 번데기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눈높이로 들고 동-,서-,남-,북-을 외쳤지요. 그러면 번데기가 목소리 따라 전후좌우로 몸을 틀었지요. 번데기에게 방향을 물어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인지. 가지고 논 다음 번데기나침반은 흙에 잘 묻어 주기나 했었는지. 그때 그 번데기들을 괴롭혀, 지금 내 길눈이 어두운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거미님 화 푸세요. 거미님의 논밭이 너무 예술적이어서 향을 던져준 거라잖아요. 논밭 텅 비어 날벌레 유인할 꽃미끼 던져준 건지도 모르잖아요.’
‘답답하긴. 꺾지 말고 그냥 둬야, 꽃이 더 오래 가지. 이렇게 경제관념이 없어서야, 원. 입에 내 줄 치기 십상인 시인으로 살려면 몰라도.’
걸음 멈추고 거미 같은 두 개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뽑아내며 거미를 응시하는 시인이 여기 있네요. 그가 거미줄로 짜 놓은 반성문 한 필 마음에 끈적 달라붙지 않나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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