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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태극기 깃봉도 흑빛으로 방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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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태극기 깃봉도 흑빛으로 방치돼"

입력
2011.02.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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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마니아' 손복환씨와 공공기관 등 다녀보니황금색이어야 할 깃봉 녹ㆍ먼지 뒤집어 써게양 위치 오류도 많아 "규정은 왜 만들었는지…"

"관공서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 걸린 게 저 모양인데 정부가 하는 말이 곧이 들리겠어? 3ㆍ1절이니 각 가정에 태극기 게양하라고? 그거 코미디야 코미디!"

올해로 운전경력 41년째인 베테랑 택시기사 손복환(66ㆍ사진)씨는 태극기 마니아다. 명함 앞면에 태극기를 붙이고 이름과 연락처는 뒷면에 새겨 넣었다. "태극기 자체가 예쁘잖아. 또 태극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 아냐."

맡은 일에 묵묵히 임하는 것과 함께 태극기에 대한 애정은 나라사랑의 작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3ㆍ1절을 하루 앞둔 28일 손씨는 태극기가 엉망으로 걸린 현장을 고발하겠노라며 기자를 태우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정면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자리잡은 게양대의 위치나 게양대 2개 중 태극기는 좌측에 걸린 것 등 국기 게양 규정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황금색이어야 할 깃봉은 거무데데한 녹을 뒤집어 써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띠었다. 국기 등 국가상징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깃봉은 아랫부분이 5조각의 꽃받침이 있는 무궁과 꽃봉오리 모양으로 하되 색깔은 황금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손씨는 "최고의 헌법기관에서조차 저러니 다른 데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다른 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실제 이동 중에 본 대부분의 깃봉은 검은색이었고, 아예 깃대와 같은 재질의 스테인리스 강으로 된 것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럴 거라면 규정 따위는 왜 만들었냐는 거지." 손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어 찾은 곳은 양재동 외교센터. 외교행사 시 각국의 국기가 함께 걸리는 탓에 20개의 게양대가 마련된 곳이다. 이날 걸린 기는 태극기를 포함해 모두 5개. 오른쪽으로 쏠려 게양됐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게양대가 짝수면 태극기를 중심으로 5개의 기가 걸리되, 태극기는 중앙에서 바로 왼쪽에 걸려야 하지만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손씨는 "여기는 태극기가 제대로 걸린 날을 찾아보기 힘든 게양대"라고 했다.

게양대 자체가 잘못 설치된 곳도 수두룩했다. 게양대 3개가 설치되는 곳은 중앙이 태극기의 자리. 또 태극기가 달리는 게양대는 다른 것보다 태극기의 세로 폭 길이만큼 높아야 하지만 대부분 똑같았다. 강남경찰서, 서울동부지검 등 손으로 이루 꼽기 힘들 정도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2008년 7월 관련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생긴 규정이라 당분간은 모양이 제각각 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게양대의 위치가 엉뚱한 곳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게양대의 자리는 건물 정면을 바라보고 섰을 때 중앙 또는 좌측이지만 신천동의 교통회관 등 알만한 기관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삼일 정신으로 쟁취한 독립, 독립운동의 상징이던 태극기가 이 정도 대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 3ㆍ1절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인식도 사실 기대하기 힘든 상황. 실제 이날 서울 세종로 교보문고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삼일절을 '쉬는 날' '개학(강) 준비하는 날'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고등학생 임가영(18)양은 "기미독립선언서 이야기도 처음 듣는다"며 "역사 사건을 시간 순으로 외우는 과정에서 한번 들었을 뿐 국사 시간에도 3ㆍ1절에 대해 특별히 배운 게 없고, 태극기를 직접 달아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심소연(17)양도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고 그보다 쉬는 날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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