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역사가들은 지금 세계가 목도하는 역사의 해일을 장구한 세월의 필연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정의와 역사법칙이 관철된 또 하나의 사례로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도전 받지 않을 것 같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 아랍세계의 지배권력이 두 달여 만에 도미노 식으로 몰락하거나 와해되는 광경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당대 사람들은 무척 당혹스럽다. "지속 불가능한 것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구를 흔히 잊고 살아왔기에.
아랍태풍 부른 20대 노점상 분신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2월 중순 튀니지의 지방 소도시인 시디 부지드에서 경찰이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20대 무허가 노점상을 단속한 것이 발단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길에서 청과물을 팔던 그는 압수 당한 물건을 찾으려고 경찰과 시청을 오가며 항의와 호소를 거듭했으나 거절되자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이때만 해도 말 그대로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한 일이었다. 이 사건이 아랍세계 민주화 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장기집권 독재권력을 향한 총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울린 몇 발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 어려웠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은 실업과 물가고에 신음하던 국민들을 즉각 거리로 내몰았고 결국 그가 사망하자 시위는 한층 격화됐다.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튀니지 정부는 유화책과 강경책을 병행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한번 붙은 불길은 국경을 넘어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아랍국가들을 덮치고 중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23년 집권한 튀니지의 벤 알리, 30년 권좌의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일찍 나가떨어졌고 42년 절대권력을 휘두른 리비아의 카다피는 백척간두 신세다.
30~40년씩 장기 집권하며 국민을 통제해온 아랍권의 독재 권력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빵과 집 문제를 악화시키고 정치개혁 욕구를 묵살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사유화한 권력 주변의 부패ㆍ축재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것에 비례해 국민의 세속화ㆍ민주화 의식이 커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아지지의 죽음이 이런 기름에 불씨를 댕겼다면, 인터넷과 트위터ㆍ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불길을 확산시킨 바람이었다. 기름과 불씨와 바람의 3박자가 2011년 초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아랍권의 변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태 전개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어떤 것일까. 어떤 관점과 태도로 접근해야 정확한 맥을 짚을 수 있을까. 일단 중동 건설시장이나 국제 원유시장 불안 등 단기적 이해타산이나 교민보호 문제는 잠시 미뤄두자. 또 카다피 식의 야만적 시위 진압 등 반인륜적 행태에 대한 국제적 제재 동참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왜 유독 아랍권이 몸살을 앓고 혼란에 휩싸였지는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이어온 1인 독재와 세습왕조를 뒤흔든 시위의 배경은 정치와 종교 등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으나 그 핵심은 생존권 및 정치개혁 요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휩쓸고 지나가며 새로운 질서를 낳는 과정에서 아랍세계는 정권의 위기관리 실패와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결과 거리엔 실업ㆍ무주택자가 넘쳐나고 기후변화 여파로 식품가격마저 급등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 퇴진을 외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국민생존 외면 수십년 권력 몰락
비록 아랍 정권이 금융위기와 기후변화의 첫 타겟이 됐지만 그런 위험은 어느 국가에나 있다. 실업, 빈부격차와 양극화 심화, 불평등 고착화와 계층 갈등의 고조, 정치리더십 약화 등 '위기 후 신드롬'은 선진국과 개도국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앓는 중병인 까닭이다. 다만 아랍세계는 눈 먼 지배층 탓에 폭발의 임계점이 낮았을 뿐이다. 제비가 오면 봄이 가까이 왔고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속 불가능한 일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바보들이 우리 주변에는 없는지.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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