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어이리스'는 이제 그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어이리스'는 이제 그만

입력
2011.02.28 12:06
0 0

의사가 불법으로 진료하면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구속되기도 한다. 변호사가 거짓 변론을 하면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기자가 사법기관을 사칭하거나 몰래 카메라를 사용하는 등 탈법적인 수단으로 거대 사회악을 폭로하면 오히려 퓰리처상을 받고 그 시대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에 하나 덧붙일 게 있다. 국가가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국가 이익을 취할 때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박수 세례를 받게 된다.

국가의 목적과 마키아벨리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상가가 니콜로 마키야벨리다. 그는 필요할 경우 국가 지도자들은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또 실용적이고 때로는 위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선이란 국가가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영속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고, 권력을 교묘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사용할 것을 강조한다.

그가 노리는 것은 단 한 가지, 그것은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느냐 하는 것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그는 국가의 본래 목적은 존재와 권력이고 그 목적을 위해서 다른 모든 요소들은 가차없이 희생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마키야벨리는 권모술수적인 사악한 정치인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서만 본다면 마키야벨리가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가장 양심적이고 존경 받는 인류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들도 대개는 마키야벨리의 전술을 써 왔다. 마키야벨리즘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단호함, 결단력, 능력과 용기, 집념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에서 설파한 것은 위기의 정치학이다. 한 국가를 관리하다 보면 위기는 언제든지 나타난다. 위기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문제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시대를 넘어선 탁월한 현실 감각 때문에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만은 비난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종자가 많은, 행복한 정치 사상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실제로 마키야벨리는 국가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특급호텔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의 교섭대표들 가방을 뒤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리적인 문제는 아예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옳고 그름은 오로지 그 행위의 결과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에 기여하는 가에 달려 있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the end justify the means) 고 보는 시각이다.

국정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을 놓고 곳곳에서 국익론이 난무한다. 국정원이 저지른 희귀한 실패 사례를 놓고 국익을 위해서이고, 인정하는 것은 국익에 위배되며, 전모를 밝히는 것 조차 국익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딴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패한 공작을 덮어두자는 논리는 곤란하다.

실패한 공작 덮을 순 없어

이미 사건은 세계 정보기관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다. 더구나 자기 나라 안방에서, 그것도 호텔 직원의 적극적인 협조아래 외국 특사단의 짐을 뒤지다 발각된 사례는 듣보기 힘든 진귀한 사례다. 그래서 "어이리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쯤 되면 솔직하게 잘못을 빌고 책임을 져야지, 아직도 정보기관의 활동을 밝히는 것은 전례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치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MB 정부는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정원의 코미디 같은 공작 실패는 정부가 노력해 온 국가 신뢰, 국가 브랜드 제고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다름 아니다. 실패한 공작은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오도된 엉터리 국익론은 이제 이쯤 해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