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바람으로 국내 건설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 탄탄한 기반을 갖춘 일부 대형 건설업체는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반면, 중견 업체나 대형 업체라도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했던 회사는 시장 진출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기존 업체, 영업기반 붕괴 우려
지난해 1, 2월 국내 건설업체가 중동에서 수주한 공사 규모는 총 211억달러. 그러나 올해는 10분의1 수준(20억400만달러)으로 급감했다. 일부 국가의 경우 당장 정권이 붕괴될 처지인 만큼 공사 발주를 대거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혈 내전사태로 심화된 리비아의 경우 올해 수주액은 거의 끊긴 상태다.
기존 업체는 특히 40년 가까이 구축한 '수주 인맥'이 와해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중동 지역은 부족장이나 왕족, 국영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인데, 기존 업체는 많은 시행 착오 끝에 이들과의 인맥을 구축해 다량의 공사물량을 수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D건설의 경우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진행 중인 호텔ㆍ리조트 등 총 5억달러 규모의 주요 공사가 현지 고위층 신뢰를 바탕으로 수주한 물량이다. 한 관계자는 "중동권 사업 수주에 있어서 인적 네트워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며 "이번 사태로 주요 진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수주 경쟁력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공사비를 제때 받지 못하는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이란에 대한 미국 제재 당시 현지에 진출했던 국내 업체가 공사비를 회수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신규 업체, 느슨해진 틈을 노려라
중동 사태가 수에즈 운하를 넘지 않고, 아랍권 주요 산유국 정정(政情)이 조기에 안정을 찾는다면 새로운 중동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태직 SK건설 플랜트기획실장은 "민주화 내전 양상이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오히려 국제유가 상승으로 풍부해진 오일달러에 기반한 발주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고유가 사태 직후인 2009년 국내 건설업계는 357억4,600만달러를 수주했는데, 이는 전년(272억달러)보다 31%나 늘어난 수치였다.
익명을 요구한 리비아 진출 건설사의 관계자도 "사태가 안정되면 인적 네트워크보다는 현지 평판과 기술력이 핵심 수주요인이 될 것"이라며 "리비아 상황이 심각한데도 각 업체가 현장 유지를 위해 최소 필요 인력은 남겨두는 것도 이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업체에 밀려 중동 시장을 공략하지 못했던 중견 업체와 일부 대형업체는 사태 종료와 동시에 현지에 진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동은 대형사 중심의 플랜트 공사 위주였지만, 내전이 종료되면 피해지역과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인프라 확충 사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인 토목 분야를 중심으로 중견업체의 진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리비아 등지에 실무진을 파견, 시장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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