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47)씨가 25일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가 왜 제 발로 한국 땅을 밟았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씨의 입국이 조명받는 이유는 그가 2007년 대선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BBK 의혹'을 폭로한 김경준(45ㆍ수감 중)씨의 누나라는 점 때문이다. 국내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지만 당시 매스컴을 타면서 얼굴이 알려진 미모의 여성으로 일반에는 각인돼 있다.
얼핏 보면 김씨 입장에서는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는 동생 경준씨가 2001년 창업투자회사 옵셔널벤처스 코리아 대표로 재직하면서 회삿돈 319억원을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범으로 가담하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BBK가 이명박 후보의 소유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다.
검찰 조사를 받을 경우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은데 처벌을 감수하고 입국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앞서 2008년 2월 사문서 위조와 허위세금 보고 혐의 등으로 미국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고 변호사 자격증도 반납했다.
검찰은 그러나 그의 입국 이유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에리카 김씨가 이전부터 보호관찰이 끝나면 입국하겠다고 약속했는데 3년의 보호관찰 기간이 올해 2월 10일로 종료됐다"며 "입국하기 사흘 전에 검찰에 입국 의사를 밝힌 후 들어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2007년 당시 김씨 수사에 관여했던 다른 관계자는 "BBK 사건은 모두 끝난 사안이고, 에리카 김씨를 조사한다고 새롭게 나올 이야기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도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동생 경준씨가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단독 범행임을 강조한데다, 동생이 모든 죄를 떠안고 중형을 선고받은 마당에 누나까지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한때 경준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찬종 변호사는 "동생이 중형을 선고받았으니 동생과 본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러 온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경준씨는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8년과 벌금 100억원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일각에선 그의 갑작스런 입국 배경에는 검찰 조사를 받고 한국에서 사업 및 동생 면회를 자유롭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김씨는 국내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상 필요에서 기소중지라는 사법적 굴레를 벗어버리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씨의 입국 시점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시점과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기획입국' 가능성도 제기되고 한다. 김씨와 한 전 청장 사건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정권 차원에서 입국 시기를 맞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임기 말 레임덕이 본격화하기 전에 정권에 문제가 되는 사건은 해결하고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같은 의혹은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전에는 그렇게 귀국을 종용해도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요즘은 잘도 들어온다"며 "(정권이) 힘 있을 때 털고 가자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김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상은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다스 측에 투자금 140억원을 돌려주고 법적 선처를 받는 거래가 이뤄져 입국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다스 측은 2003년 5월 김씨 남매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소송을 냈지만 2007년 패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기획입국을 했건 말건 우리가 알 바 아니며 조사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임현주기자 korea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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