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0일 서울팔래스호텔. 취임 후 처음으로 10대 건설사 대표들과 마주앉은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초면부터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힘의 우위를 앞세운 대기업이 하도급 업체에 부담을 떠넘기는 관행이 여전하다"며 ▦대금 결제일을 늦추거나 ▦결제수단을 현금에서 어음으로 ▦단기에서 장기어음으로 대체하는 등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당장 대기업의 어려움은 모면할 지 몰라도 결국 신뢰를 깨뜨려 중요한 파트너를 잃게 된다"는 게 김 위원장의 결론이었다.
김 위원장의 지난 달 '작심 발언'에는 근거가 있었다. 친기업을 표방하며 출범한 현 정부 초기 2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하도급 관행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비해 모조리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28일 공정위가 공개한 2010년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결과에서 유일하게 호전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위의 하도급정책 만족도'였다.
지난해 공정위는 원사업자 5,000개(수급사업자 9만5,000개는 보조조사)를 대상으로 2009년 하반기에 이뤄진 하도급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먼저 하도급법 위반 혐의와 관련, '하도급 거래가 있었다'고 응답한 업체(3,580개)의 47%(1,682개)가 '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43.9%)이나 현 정부 첫 해인 2008년(42.9%)보다 각각 3.1%포인트, 4.1%포인트 높아진 수치. 하도급법 위반업체 비율은 1999년 81.9%에서 2000년대 들어 해마다 꾸준히 낮아졌으나 현 정부 들어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자의적인 사후 해석 같은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서면계약 비율도 현 정부 들어 낮아졌다. 2009년 하도급 서면계약 비율은 78.3%로 2003년의 69.0%, 2005년의 75.6%보다는 개선됐지만 2007년 80.8%, 2008년 83.1%보다는 더 나빠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건설사와 대기업 경영진에게"가급적 현금으로 거래대금을 지급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으나 하도급업체에 대한 대금지급 실태는 최근 계속 악화일로다. 그의 지적대로 현금결제는 줄고 장기어음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하도급대금 가운데 현금성결제(현금ㆍ기업구매카드ㆍ구매자금대출 등 포함) 비율은 92.9%로 99년(44.2%), 2004년(80.3%)보다는 상당히 개선됐으나 가장 높았던 2007년(95.3%)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반면 어음결제비율(5.5%)은 역대 최저였던 2007년(4.6%) 이후 1%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특히 하도금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한 업체 가운데 만기일이 60일을 초과하는 '장기어음' 지급업체 비율(24.9%)도 2007년(20.4%)과 2008년(19.9%)에 비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수급사업자와의 협력 증진을 위해 기술ㆍ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는 업체비율(48.2%)도 2008년(49.2%)보다 줄었으며 전반적인 하도급 거래상황 개선정도(72.5점) 역시 1년 전(73.1점)보다 낮아졌다. 반면 유일하게 공정위의 하도급정책 만족도(76.6점)만 2006년(72.4점) 이후 매년 상승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건설ㆍ제조업체들이 어려워지면서 하도급 관련 수치도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동반성장 정책 역시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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