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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민경제리포트-그들에겐 봄이 없다] <4·끝> 농민의 봄: 가축과 함께 희망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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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민경제리포트-그들에겐 봄이 없다] <4·끝> 농민의 봄: 가축과 함께 희망도 묻었다

입력
2011.02.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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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질없는 미련인 줄 알지만 "소를 다시 키울 수 있을까"

지난 24일 경기 포천시 외곽의 한 섬유회사 작업장. 의류 원단을 만들고 있던 강수명(38ㆍ가명)씨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다섯 살 둘째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 휴대폰 너머로 딸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집에 언제 와? 많이 보고 싶은데….”

강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 이천에서 소 84마리를 키웠던 축산농이었다. 하지만 구제역으로 올 초 소를 모두 파묻었다. 갑자기 뚝 끊긴 수입. 무엇이든 해서 다시 돈을 벌어야 했고, 열흘 전부터 이곳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

“아빠 토요일에는 갈 거야. 엄마 말 잘 듣고, 조금만 기다려. 사랑해!” 잠시 강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우사를 짓고 소와 사료를 구입하는데 들어간 돈의 대출 이자만 월 100만원에 달해 감당할 재간이 없다”며 “당분간 가족과 떨어져서 이곳에서 일할 생각인데 자꾸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사실 그는 늦깎이 농부였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뒤 12년간 섬유회사에서 일하다 2003년 결혼과 함께 처가가 있는 이천으로 귀농을 했다. 10여년간 소를 키워온 장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렇잖아도 섬유업계 불황으로 소득이 변변치 않았던 때라 소를 키우며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결심을 굳혔다.

시작은 소 네 마리. 단출했다. 우사를 새로 짓고, 트랙터, 원형 베일러(볏짚 묶는 기계), 사료 등을 구입했다. 초기 투자로 2억5,000만원의 큰 빚을 졌지만 월 평균 300만원 정도를 벌면서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었다.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씩 결실이 맺어져 2009년에는 이천시가 매년 1, 2명 선발하는 번식우 전문농가에 뽑히기도 했다. 강씨의 인생에 조금씩 희망이 꿈틀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작년 12월 말, 저 멀리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한 달 만에 이천을 덮쳤다. 그 해 마지막 날인 31일, 강씨 농장에서도 소 한 마리가 입에 수포가 생기고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는 양성. 그는 정성껏 키워 온 84마리 소 모두를 축사 옆 텃밭에 묻는 일로 신묘년을 시작했다.

강씨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지중지 키웠던 녀석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너무 순했던 ‘삼순이’, 젖을 빠는 새끼 송아지를 가끔 걷어 찼던 ‘지랄이’, 11살로 제일 나이가 많았던 ‘늙다리’, 2004년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우수상(상금 300만원)을 차지해 큰 딸 돌잔치도 치르게 해준 ‘상탄이’…. 축사 곁에만 가면 그 놈들 얼굴이 생생히 떠 올랐지요.” 살처분 직후 그는 이유 없이 텅 빈 축사를 둘러보는 버릇까지 생기기도 했다.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축산농민의 소식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보상금(1억6,800만원)은 받았다. 그러나 마이너스 통장대출 1억원을 갚았는데도, 아직 1억1,000만원이나 빚이 남아 있다. 돈을 벌어다 줄 소는 다 죽었는데, 매달 100만원씩 내야 할 이자는 그대로였다.

이웃 농가들도 모두 초토화됐다. 강씨가 귀농할 때 많은 도움을 줬던 인근 축산농 공모(44)씨는 13년간 종자개량을 해서 키운 소 195마리를 살처분 했다. 보상금으로 빚을 일부 갚았지만, 그래도 2억원이 넘는다. 또 다른 인근 축산농인 변모(33)씨도 소 60마리를 살처분했다. 이제 결혼한 지 1년여.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생계도 막막해지면서 요즘은 대리기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급히 포천으로 오는 바람에 요즘 회사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월세를 구해볼까 했지만 변두리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보증금 500만원에 월 35만원,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전기료, 가스료, 수도료 등까지 감안하면 매월 50만원 이상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월급 200만원으로는 큰 부담이죠. 저렴한 전세가 나온 곳은 없는지 좀 더 알아봐야겠어요.”

강씨는 재기를 다짐하지만, 가끔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정말 내가 다시 소를 키울 수 있을까.” 소를 묻을 때 그는 희망도 함께 묻어 버린 듯했다.

포천=글ㆍ사진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축산농민, 구제역 책임론 등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에 더 마음고생

축산 농민들은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구제역 책임, 거액보상금 등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다"며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은 발언도 축산농민들에 대한 차가운 시각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

이상훈 양돈협회 안성지부장은 "마치 모든 것을 우리가 잘못해 구제역에 걸린 것으로 인식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돼지 1,928마리를 살처분한 축산농 왕모(49)씨는 "가지급금만 3억3,000만여원을 받았을 뿐 아직 보상금 총액은 결정 되지도 않았는데 주위 사람들이 '보상금으로 10억원을 받았다며?'라고 물어와 난감했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구제역을 옮길까, 외출조차 부담이다. 경기 이천의 한 농민은 장보러 가기도 눈치가 보여 이웃에게 부탁해 마을 어귀 약속한 장소에 물품을 놓고 가면, 차를 타고 가 찾아오곤 한다. 그는 "시에서 '돌아다니면 (보상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며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은 관련단체들은 최근 '농촌과 축산농가는 두 번 웁니다'라는 호소문을 냈다. 한지태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대외협력팀장은 "도덕적 해이, 보상금 문제, 가축 매몰지 등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축산업 무용론까지도 나오는 상황"이라며 "축산농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부터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농민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농촌경제연구원이 수의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구제역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중앙ㆍ지방 정부의 방역체계 미흡'이란 응답이 49.1%로 가장 높았다. '축산 농가나 발생 농장에서 방역체계가 미흡했다'는 응답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26.8%였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외국서 유입 막아낼 검역시스템부터 바꿔야

2000년 이후 다섯 차례.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축산 농민들의 피해는 반복됐다. 특히 이번 구제역은 '역대 최장', '역대 최악' 등 온갖 기록을 갈아치웠다. 따라서 검역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또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개선이 가장 시급한 분야는 검역시스템. 이번에도 구제역 바이러스는 외국에서 유입됐다. 첫 관문인 공항에서 철저한 방역과 검역으로 가축 전염병을 차단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고, 해외 여행을 다녀온 축산 관계자를 철저히 관리하는 게 기본이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축산 대국(大國)인 호주는 공항 입국 절차 비중이 검역 80%, 법무ㆍ세관 절차 20%일 정도로 외래 전염병의 유입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입ㆍ출국 수속 시간을 단축하는데 급급해 당연히 이뤄져 할 검역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지적이다.

가축의 이동 경로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병준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력추적제를 소뿐만 아니라 돼지에도 도입하고, 구제역 바이러스 전파 역할을 했던 가축 판매상이나 사료 운송업자에게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의 확보도 시급하다. 현재 각 시도 가축위생시험소의 수의사 인력은 약 560명인데, 이는 일본(5,000명)의 10%에 불과하다. 정부는 수의사들이 정기적으로 농장에 전화를 걸어 가축 증상을 점검하는 '전화 예찰'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으나, 전화로 전염병을 얼마나 잡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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