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의 근로자는 국경까지 걸어 난민으로, 부자 나라 근로자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자국으로.”
리비아 사태가 무력충돌 초읽기에 들어가며 국경 지대와 벵가지항이 밀려드는 인파에 사실상 난민촌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부자나라 근로자와 빈국의 노동자 사이엔 탈출 경로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8일 AP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리비아 서쪽의 튀니지 접경엔 리비아에서 탈출하려는 노동자들이 담요와 침낭, 여행가방 등을 끌고 절차를 밟기 위해 긴 줄로 늘어서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가 전투기까지 동원, 시위대를 진압하자 안전을 찾아 이곳까지 온 것. 이에 따라 튀니지 군 당국은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 천막 캠프까지 세웠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 유입에 더 이상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유엔난민 최고대표사무소(UNHCR)의 판단이다. UNHCR 관계자는 “2만여 명의 이집트인들이 튀니지 접경에서 며칠째 음식과 임시 거처가 부족, 야외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전했다. UNHCR은 지난 1주일간 리비아에서 인접 국가로 10만여명의 이주 노동자가 탈출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버스나 도보로 튀니지로 탈출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리비아엔 이집트인 150만명, 나이지리아인 200만명, 수단을 비롯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출신 250만명 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비행기를 탈 만한 돈이 없어 평소에도 휴가를 받으면 1주일 이상 도보로 고향에 다녀온다. 더군다나 최근 리비아에서는 교통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이전엔 45인승 버스 한대를 임차하는 데 500디나르(400달러)였는데 최근엔 9,000디나르(7,200달러)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리비아 제2의 도시이자 항구가 있는 벵가지도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몰리면서 난민촌이 되고 있긴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항공기와 선박을 동원, 자국민을 탈출시키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반면 방글라데시, 가나, 베트남, 태국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는 언제 자국 정부가 보낸 배가 올 지 기약할 수도 없어 발발 동동 구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벵가지항에는 각국의 노동자 2만여명이 몰려들어 트레일러 등으로 급조된 임시캠프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작은 방에서 10명 이상이 잠을 자야 할 정도로 공간이 비좁고 음식도 턱없이 모자라다.
한편 리비아 내 자국민 탈출 지원에선 독일이 가장 먼저 의료팀 및 군함을 파견하는 등 민첩하게 움직여 눈길을 끌었다. 영국은 늑장 대처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군함과 특수부대까지 동원, 사막에 고립된 자국민을 구출하는 작전을 폈다. 미국, 중국, 그리스 등도 자국민 수송을 위한 전세기 및 여객선을 급파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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