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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1' 펴낸 철학자 이정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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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1' 펴낸 철학자 이정우씨

입력
2011.02.2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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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정우(52)씨가 <세계철학사 1> (길 발행)을 냈다. 세 권으로 계획된 책 가운데 1권 '지중해세계의 철학' 편이다. 800쪽 넘는 투실한 분량에 우선 눈이 간다. 펼쳐 보면 그리스와 중세 유럽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아라비아의 면면한 지적 흐름을 포괄한 남다른 시각과 공력이 돋보인다. 철학사 저술이 으레 갇히는 분별 지향적 태도 대신 통섭적 태도를 취한 글쓰기다. 폐쇄적 제도권 강단(서강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만들고 10여년 이어온 분방한 '철학 하기'의 정리 작업인 셈. 이씨는 각각 '아시아세계의 철학'과 '근현대세계의 철학'이라는 만만찮은 부제를 단 2, 3권도 "한 해에 한 권씩" 상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_할 일이 많을 텐데 이미 수십 가지 버전이 나와 있는 철학사를 집필한 까닭은.

"한국에서는 철학자들 사이에도 대화가 안 된다. 데카르트다, 유교다 파편적 연구는 있지만 각각의 섹터로 존재할 뿐 공유할 수 있는 지반이 없다. 사상계를 아우르는 전체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서구 중심, 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향된 사상사를 바로잡아 21세기 세계화에 대한 균형 잡힌 지적 준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은 16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의 언어와 논리로 기술된 왜곡된 모습이다. 그러나 13세기까지 지중해의 중심은 훨씬 동쪽이었다. 오늘날 일방적 세계화의 바탕에는 영프독 중심의 철학 기술, 허구에 가까운 역사 서술이 존재한다고 본다. 역사 속의 제 자리에 위치하는 철학, 곧 보편적 철학사가 필요한 이유다."

_동ㆍ서양의 여러 사상을 같은 층위의 철학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한가. 예컨대 주자가 성즉리(性卽理)를 설파하는 논리와 칸트가 정언명법을 도출하는 논리를 해석할 때 동일한 인식론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서양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골이 깊다. 프랑스 현대철학을 하는 사람과 영미 계통 분석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표현하는 언어가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뿌리 내린 전통이 다르더라도, 철학적 문제의식이나 사유의 알맹이가 완전히 이질적이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시대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했는지, 철학적 담론이 철학 바깥의 삶의 장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공이 예(禮)를 강조한 것도 순장이 횡행하던 야만의 세계에서 문화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시대적 요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넓게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르게만 보이는 것이다."

_<세계철학사> 와 오늘날 한국의 현실 사이의 접면이 있다면.

"직접적 접면이라기는 뭣하지만… 얼마 전 TV에서 구제역 관련 내용을 보고 나서 꿈 속에 지옥이 나왔다. 문명사적으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단계라고 본다. 철학의 질문은 이미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생존할 수 있을까'가 된 것 같다. 2권에 쓸 내용 중에 '천하의 철학'이라는 표현과 '강호의 철학'이 있다. 천하는 파워를 소유한 지배층이 보는 세상, 강호는 요즘 말로 하면 시민의 시각에 비친 세상이다. 대학이라는 것이 완전히 국가 권력과 자본에 포섭돼 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철학은 시민사회의 실천적 담론으로서 기능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책이 그 고민스러운 여정의 지도가 됐으면 좋겠다."

_요즘의 인문학 소비 풍토를 어떻게 보는가. 안토니오 네그리나 슬라보예 지젝 같은 스타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더니 요즘은 존 롤스 류의 케케묵은 공리주의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인문학의 세계에도 우발적 상황과 분위기에 좌우되는 거품과 그 아래 도도히 흐르는 굵직한 흐름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수십만 권씩 팔리는 건 일종의 지적인 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사회적 갑갑함이 그런 식으로라도 표출돼 나오는 거겠지. 이 세계가 거의 종말론적 분위기로 흐르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인문학, 특히 철학의 존재 가치는 특수한 상황의 실용적 해결 도구로서보다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세계와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을 주는 데 있다. 제대로 된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 까닭도 그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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