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64)씨는 절도7범의 전과자다. 서울 동대문,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행인들의 지갑을 털어온 전문 소매치기였다. 스물셋 나이에 교도소 문지방을 넘은 후 15년이나 들락거렸다. 그는 출소 때마다 "또 남의 물건에 손 대면 손목을 잘라버리겠다"고 의지를 다졌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범죄의 유혹에 재차 빠져들었다. 기실 그 누구보다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전과자라는 이유로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말끔히 손을 씻게 된 것은 5년 전 무의탁출소자보호시설인 한마음쉼터(이하 쉼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는 쉼터에서 소개받은 염색공장에 취직해 직접 땀 흘려 돈을 벌었다. 3년 전엔 구파발에서 노점상을 하던 부인 백모(65)씨를 만나 혼인신고를 하고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쉼터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면서 김씨는 뒤늦게 찾아온 소박한 행복이 달아날까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708-1번지. 쉼터에는 김씨처럼 혈혈단신 오갈 곳 없는 출소자 15명이 2층짜리 주택(60평)은 생활관으로, 컨테이너건물(20평)은 예배당으로 사용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쉼터를 거쳐 간 출소자만 300여명.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넘게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 출소자들은 취업을 해 자리가 잡히면 곧 이곳을 떠난다. 쉼터에 머물다 결혼한 사람이 22명, 또 4명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사재를 털어 21년째 쉼터를 이끌고 있는 김순회(69) 목사는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뿔뿔이 흩어지는 일 밖에 남은 게 없는 것 같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쉼터가 있는 지축동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데 당장 갈 곳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보상비를 받고 떠난 지 오래고 쉼터만 남긴 채 주변 건물 대부분이 철거됐다.
김 목사와 출소자들이 쫓겨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은평구 진관내동에 남의 땅을 빌려 무허가 비닐하우스(100평) 한 동을 지어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은평뉴타운 개발에 밀려 2007년 7월26일 철거됐다. 당시엔 가건물에 대한 보상비(3,000만원)라도 지급이 됐지만 이번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릴 처지다. 그 사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1억5,000만원에 이른다.
김 목사는 올 봄 쉼터에서 독립해 가정을 일군 여섯 쌍의 합동결혼식을 열어주기로 했지만 그 약속도 못 지키게 됐다. "살인죄로 12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사람이 있어요, 밤낮없이 일만하더니 지금은 좋은 사람 만나 연신내 쪽에 신혼살림을 차렸죠. 꼭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김 목사는 그이가 어떤 이유로, 누굴 죽였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제 살인자라는 낙인을 떨쳐버리고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전국 교정기관 47곳의 출소자는 2만5,552명(노역 벌금 형집행정지는 제외)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은 부실하고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국적으로 22개의 출소자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나 최대 수용인원은 600여명 수준이다. 법무부가 지정해 위탁 운영하는 민간사업자도 7곳에 불과하며 240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최대 2년에 불과하고 재입소도 금지돼 출소자들의 불만이 크다. 법무부 관계자는 "보호시설 이외에 출소자 대상 주거지원사업으로 매해 150명씩 선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나머지 수요는 사실상 교회 등 봉사단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지쳐 보였다. "몇몇 교회에서 후원을 해주긴 하는데,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장애인시설은 그나마 관심들이 많지만 출소자들에 대해선 여전히 편견이 많은 탓인지 꺼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조그만 공간이라도 새로 얻어 그저 현상유지를 하는 것뿐이다.
"범죄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죠, 그렇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들에겐 새 삶을 살아갈 기회는 한번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목사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강윤주 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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