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쌍용차 사태가 77일간의 처절한 파업 끝에 '8ㆍ6 노사 대타협'으로 마무리됐지만, 해고자와 무급휴직자들의 힘겨운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지병 악화로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도 13명에 이른다. 2011년 3월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고 있지만, 이들의 봄은 언제나 찾아 올까.
2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건너편 인도에서 만난 장모(41)씨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서 활동 중인 장씨는 또 한 명의 동료를 떠난 보낸 슬픔에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지난달 26일 숨진 채 발견된 임모(43)씨처럼 장씨 역시 복직을 기다리는 무급휴직자 462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아내와 아이들이 우울증을 앓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장씨는 1994년 쌍용차 평택공장에 입사한 이후 15년 이상 근무했다. 결혼자금과 카드 빚 등으로 약간의 부채는 있었지만 아내(40)와 함께 중학생(15)과 초등학생(10) 자녀를 데리고 오순도순 살았다.
시련은 2009년 1월 임금이 체불되고 그 해 5월 공장 점거농성이 시작되면서 찾아왔다. 8월 6일 농성은 끝났지만 생활고는 가중됐다. 수입이 전혀 없어 은행 대출금이 쌓여갔고 이자가 이자를 낳기 시작하더니 2009년 말 빚은 1억원에 이르렀다.
장씨는 결국 법원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개인회생계획에 따라 내야 하는 월 65만원의 납입금은 높은 벽이었다. 밤 9시부터 새벽 1~2시까지 대리운전으로 버는 돈으로는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했다. 결국 아내가 생업전선에 뛰어 들었지만 장씨 부부가 버는 돈은 한 달에 170만~180만원. 회생 납입금 65만원과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등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장씨는 "70이 넘은 노부모로부터 월 50만원씩 받고 있다. 아들 노릇,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게 가장 염치 없고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가장 큰 걱정은 아내다. 우울증 증세라도 보일라치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최근 동료나 그 가족들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더욱 마음이 무겁다. 장씨는 "가끔 집에서 김치에다 소주잔을 나누다 아무 말 없던 집 사람이 '언제까지 끝이 안 보이는 생활을 계속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울먹였다.
1994년 입사해 쌍용차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전모(42)씨는 지난해 11월부터 평택시내 공사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있다. 일당은 7만원이다. 한 달에 150만원 가량 벌어 아내와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5)을 부양하고 있다. 전씨와 함께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는 쌍용차 무급휴직자들은 10여명이나 된다. 전씨는 복직만을 기다릴 수 없어 다른 회사에 수 차례 입사원서를 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는 "이력서에 '쌍용'자만 들어가면 바로 떨어졌다"며 "강성노조라는 외부의 시각과 '잘렸다'는 선입견이 넓게 퍼져 있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일이 없는 날 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또 한번 그를 좌절하게 만든다. "아빠 왜 일 안 나가"라는 질문에는 가슴 깊은 곳이 먹먹해진다. 전씨는 "과연 복직이 될까 의문스럽다"며 "(복직은 늦춰지더라도) 제발 유급전환이라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1년 뒤 복직'이란 마지막 희망이 지난해 8월 시한을 넘기면서 기약 없이 무너지며 쌍용차 노동자들은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사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동안 극심한 생활고에 쪼들리던 노동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있다. 지난달 숨진 무급휴직자 임모씨가 세상에 남긴 것은 잔고 4만원인 통장과 카드빚 150만원이 전부다. 그의 부인은 지난해 4월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씨는 숨지기 하루 전에도 친구에게 "아이들 학비만 생각하면 가슴이 숯덩이가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무급휴직자를 포함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쌍용차측이 정리해고안을 발표한 2009년 4월8일 이후 지금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고 또는 실직의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해 사망한 노동자가 13명에 이른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목숨을 건진 이도 3명이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금속노조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무급휴직자의 죽음은 "1년 뒤 복직을 지키지 않은 사측의 약속불이행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무급휴직자들은 지난해 9월 이미 복직했어야 하지만 돌아가지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 채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죽음이 다시 발생할 수 있어 정말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평택=강주형기자 cubie@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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