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은 정책적 발상으로 포장되지만 그 본질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후보들은 경기 부양, 지역균형발전 등의 명분을 내걸고 대형 사업을 약속하거나 추진했지만, 이로 인해 되레 역풍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역풍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지역주의였다. '입지 선정 및 사업 진행 과정에서 지역 간 이해 충돌 → 지역 갈등 및 국론 분열 사태로 비화 → 정권의 부담 가중' 등의 비슷한 패턴이 수 차례 반복됐다.
정치인들이 표와 정치 논리에 치우쳐 국책 사업을 결정한 것도 이런 악순환에 한 몫 했다. 대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주 해왔던 충청권에서 유독 국책사업 입지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현정권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세종시, 의료복합단지 등을 충청권에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업들은 다른 지역의 반발에 부딪혀 표류했거나, 표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과학벨트 및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본사 이전 등 국책사업 입지 선정과 관련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충청권 민심이 걸려 있는 과학벨트 사업과 영남권을 남북으로 갈라 놓은 신공항 건설 사업은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 및 대선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사업 유치에 실패한 지역 민심이 현정권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내부에서 지역 갈등을 낳고 있는 신공항 입지 논란을 보며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는 동안 논란이 됐던 위천 국가공단 건설 갈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당시 대구는 달성군 위천리에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했지만, 부산과 경남지역은 "식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정부는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지루한 싸움 끝에 사업은 무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에 신행정수도를 짓겠다는 대선 공약으로 충청 표심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결정적 승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재미 좀 봤다"고 할 정도였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충청권 압승도 수도 이전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수도 이전 사업은 한나라당과 보수층, 수도권 지역의 반발에 발목을 잡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열린우리당이 약발이 다한 수도 이전 사업 때문에 충청권에서 참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충청권 표를 겨냥해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하고 과학벨트 건설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엔 말을 번복했고, 이는 지역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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