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아침 정부과천청사 대회의실. 예정에 없던 장관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2월 소비자물가가 경악할 만한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되자, 전날 김황식 국무총리가 대책마련을 위한 장관회의 개최를 지시한 것. 그 때까지만 해도 회의명칭은 '물가 및 에너지절약 관계부처 장관회의'였으나, 물가의제에 집중하자는 취지에서 이날 아침엔 아예 '물가안정 관계부처 장관회의'로 변경됐다.
하지만 '예상대로'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올 들어 장ㆍ차관급 물가관련 공식회의만 벌써 11번이나 열렸고 이날도 10개 부처장관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결론은 종전 발표사항을 재확인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관들이 모여도 '우려'말고는 나오는 게 없자 일각에선 "장관들이 긴급회의라고 모여서 도대체 뭐하는 거냐"는 비판 속에 "물가문제는 이제 더 이상 대책이 없다" "거시ㆍ미시정책 모두 약발이 소진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를 비웃듯 올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매달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4.5%를 기록, 2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의 물가억제목표는 3% 수준이지만, 올 들어 두 달 연속 4%를 넘는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 전월 대비로도 0.8%의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유가 및 곡물ㆍ원자재가격의 급등, 이상한파로 인한 신선채소가격 폭등, 구제역으로 야기된 육류가격상승 등이 겹친 결과"라며 "이런 공급요인 외에 소득증대에 따른 수요요인까지 인플레이션에 가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바구니 물가를 대표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 달 25.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물가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일각에선 고물가 속에 실물경기마저 위축되는 '스태그플레이션'우려가 나오는데도, 정부 대책은 사실상 실종됐다는 점. 지난 1월 초 물가와의 전쟁 선언 이후 사실상 모든 행정력이 동원되고 있지만 물가 상승률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폭을 키워가고 있다. 기름값, 통신료 등 정부가 '타깃'으로 정한 품목 역시 요금인하는 감감 무소식. 정부 고위관계자는 "현재로선 기존에 내놓은 대책을 재점검하는 것 외에는 달리 취할 수단이 없다"며 물가대응의 한계를 실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외부 악재가 워낙 강해 지금은 백약이 무효한 상황인 동시에 정부의 어떤 정책도 강하게 밀어 부치기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며 "정부로서는 한번 퍼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인플레 기대심리 차단에 집중하는 게 그나마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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