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남편이 약속한 게 있다. 아이를 낳으면 담배 꼭 끊겠단 소릴 입에 달고 지냈다. 그 말만 철석 같이 믿고 기다렸건만 웬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만 가지 잔소리에도 흔들림 없던 남편의 담배 습관이 요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주말 오전 달콤한 늦잠을 즐긴 우리 세 식구는 보통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다. 처음에 밥상머리에 붙어 있던 아이는 배가 불러오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그걸 쫓아다니며 밥 먹이다 보면 내 식사는 자연히 뒷전이 된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먼저 식사를 끝낸다. 그리곤 조용히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슬그머니 신발을 신는다. 바로 그 때, 아이가 소리친다. "아빠! 어디 가!"
머쓱해진 남편은 밖이 얼마나 추운지 보러 간다느니, 주차하고 와야 한다느니, 경비아저씨 만나고 온다느니 하고 둘러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빠 말을 곧이곧대로 믿던 아이가 네 살이 되더니 "아니야, 담배 피러 가지?"하며 바른 말을 한다. 눈치 한번 제법이다.
그 눈치 어떻게 생겼을까. 주말 식사 때마다 반복되는 아빠의 행동패턴이 아이 머릿속에 입력됐고, 아빠가 들어오면 엄마가 늘어놓는 잔소리에서 아빠가 담배를 피우고 왔다는 걸 알아챘을 게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 '거울뉴런'이 관여할 거란 추측을 한다.
거울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비춰주는 신경세포. 어떤 사람의 행동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를 파악할 때 우리 뇌가 거울뉴런에 비친 행동을 과거 그 사람의 행동과 비교해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얼추 그 사람이 뭘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게 바로 눈치다. 눈치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인간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거나 이해하는 것 역시 거울뉴런 덕분이라는 주장도 있다.
1996년 처음 알려진 거울뉴런은 뇌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아이 뇌 속에서도 거울뉴런이 작동하기 시작한 걸까. 그러나 이 특별한 세포가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과학자도 적지 않다. 실험으로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주말 식사 때마다 아이에게 딱 걸린 남편은 대충 둘러대며 황급히 나가려 하고, 아이는 아빠 옷자락을 잡아 끈다. 남편과 아이가 담배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늦은 식사를 하며 난 그냥 조용히 미소만 짓는다. 속으로 '우리 아가 잘 한다!'고 외치며 말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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