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제 안면윤곽 수술 이런결과가... 삼성전자 A/S 평생무료 네비게이션 공
관련기사 한국문화의 한 표상(表象)으로 아리랑은 대한제국의 고문관이 되었던 미국 선교사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가 채록해 남겨준 아리랑 악보에서부터 새 역사를 이룩했다. 1886년(고종 23) 나라에서 세운 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초빙 교수였던 그는 한국소식(Korea Repository)에 <한국의 향토음악(korea vocal music)> 이란 제목으로 아리랑의 악보와 영문 번역 가사를 기록해 남겨, 근대 아리랑의 역사를 만들었다. 한국의>
춘사 나운규(春史 羅雲奎,1902-37)의 영화 아리랑은 헐버트의 이 기록을 바탕으로 아리랑의 새 역사를 추동했다. 따라서 귀중한 기록을 남겨준 선교사 헐버트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오늘과 같은 한국 아리랑의 역사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헐버트는 이 아리랑을 채보(採譜)해 남겼을 뿐 아니라, "포구(浦口)의 어린애들도 부르는 이 아리랑은 조선 사람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노래이며, 조선 사람은 즉흥곡의 명수로, 바이런이나 워즈워스에 못지않은 시인들"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포구의 어린애들'에게까지 널리 불리는 모습을 전하고, '즉흥곡의 명수'라는 대목에서는 아리랑이 즉흥적으로 지어졌던 미학과 아리랑의 근대적 성격을 여실히 증언해 주었다. 더욱이 그가 이 노래를 "조선 사람들에게 '쌀'과 같은 노래"라고 한 대목은, 이 가난한 시대에 한국 사람의 생명의 양식, 영혼의 상징으로 아리랑을 평가했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다음 시대, 항일 투사 김산(金山, 본명 張志樂,1905-38)의 구술 자전(自傳) <아리랑(song of arirang)> 을 영어로 쓴 님 웨일즈는 그 출간 53년에 남긴 <아리랑 회고> 로 한민족의 아리랑이 이제 세계의 노래임을 천명하였다. 아리랑> 아리랑(song>
"근래에 와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아리랑> 이 한국인들에 대하여 쓴 책으로 최고의 책이라고 말해 주었다, 일본의 저명한 이와나미(岩波) 출판사는 이 책을 그들의 세계명작선집(WORLD CLASSICS)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내가 듣기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며, 한국 사람이 그들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고 한다." (중략) "나는 오랫동안 아리랑이 영화만이 아니라 웅장하게 짜여진 그랜드 오페라의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으며…. 거기에서 아리랑은 한 곡조의 노래이자 배경이며 작품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님 웨일즈의 아리랑 회고문, 백선기 지음: <미완의 해방노래> , 정우사, 74-77쪽). 미완의> 아리랑>
흥미로운 것은 그미가 이 책의 역사적 평가와 함께, 민요 아리랑을 영국의 전통민요 '초록 소매(Green Sleeves)'에 비겨 이야기하는 대목이며, 그미의 아리랑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대목이다.
마침 지난 주간 정월 대보름날에는 세계인이 모이는 인사동 네거리에 '아리랑 작은 전시관'과 '아리랑학교'와 '아리랑 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나는 스스로 50년 넘게 살아온 한강변, 헐버트와도 관련이 있는 노량진교회 근방에 아리랑 노래비를 세우리라는 소망을 다짐했다. "쌀의 노래, 삶의 노래 아리랑"
동국대 명예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