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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알면서 당한 저축은행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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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알면서 당한 저축은행 사태

입력
2011.02.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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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참 신기한 기관이다. 사람들이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은 사실상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보통 돈을 꾸는 사람이 부탁을 하기 마련인데, 은행은 돈을 꿔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셈이니 이상도 하다. 은행의 이런 신기한 능력은 은행이 가진 신용에서 비롯된다.

규제 유예로 문제 더 커져

사람들은 종종 번 돈을 다 소비하지 않고 돈이 필요할 때를 위해 저축을 한다. 이 저축이 실제로는 남에게 지금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필요할 때 찾아오는 거래이다. 은행은 저축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꾸어 지금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그런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자율 차이로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다.

이 거래에서 은행의 역할은 저축을 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돈을 꾸어 가는 사람들이 돈을 갚을 것인가를 직접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중간에서 그 돈을 일단 갚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은 그들의 대출이 예금자들의 돈을 상환하기에 충분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당연히 은행이 그 돈을 돌려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예금을 한다. 만일 은행이 예금을 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개인 사이에 돈을 갚지 않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듯 사람들은 은행 예금을 인출하려 들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건전한 은행도 갑자기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몰려 예금 인출을 요구하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행은 예금자들의 돈의 대부분을 좀 더 높은 금리에 대출해 주었기 때문에 갑자기 인출 요구가 몰려들면 이를 충족시킬 방법이 없다.

사람들이 갑자기 모두 예금을 인출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정말 필요할 때까지 기다리면 은행은 그 때까지 대출로 충분한 수익을 올려 예금을 돌려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들이 건전한 대출을 하도록 상시적으로 감독을 하여 은행들이 신용을 유지하도록 유도하고 과도한 위험을 안고 있는 은행에는 규제조치를 취한다.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조치는 그 대상인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오히려 그 은행의 파산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금자들에게 알려지면 신용을 잃은 은행에 예금을 한 사람들은 즉시 예금을 인출하려 들므로 그런 은행은 파산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감독당국이 규제를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곤 한다. 감독당국은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런 은행이라도 당장 파산하는 것은 더 싫어한다. 왜냐하면 더 기다렸다 나중에 운이 좋아 부실대출이 상환되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감독당국이 규제조치에 앞서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고 있는 은행에게 건전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여도 은행들은 더러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감독당국의 규제조치는 그 은행의 파산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는 감독당국도 원하는 바가 아니므로 감독당국의 권고를 지키지 않아도 당장은 문제가 없으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규제 유예라고 부른다. 최근 저축은행 산업의 문제는 규제 유예로 인해 문제가 더욱 커진 경향이 있다.

스스로 건전성 개선 힘쓰게

그 동안 국내 저축은행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스(PF) 투자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손을 대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알면 다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제 기왕 문제를 까발렸으니 철저히 문제의 근원을 치료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규제 유예로 인해 감독당국이 규제를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건전성 개선 노력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저축은행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보내 자발적으로 건전성 개선에 애쓰는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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