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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전쟁' 한국일보 김현수기자 피자집 아르바이트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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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전쟁' 한국일보 김현수기자 피자집 아르바이트 체험기

입력
2011.02.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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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용 베이지색 바지 위에 두터운 방한바지를 입었다. 위에는 반팔 티에 방한 재킷, 그리고 붉은 점퍼를 걸쳤다. 움직임이 조금 둔했지만 겨울 비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 가게 인근을 돌며 주요 건물을 눈으로 익혔다. 스물둘 나이 어린 선배님은 서른 즈음의 기자에게 손님 응대요령, 최단 이동거리 등의 배달정보를 하나씩 알려줬다.

기자는 지난달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휴일 제외) 서울 도심의 한 대형피자업체 체인점에서 파트타임 배달을 했다. 피자업체의 무리한 '30분 배달보증제'가 애꿎은 젊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여론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실제 기자가 배달을 하던 지난달 13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거리에서 김모(19)군이 다른 업체의 피자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버스에 부딪혀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오토바이 안장에 오르기가 겁날 만큼 섬뜩했다. 기자가 속한 업체는 지난달 21일 30분 배달보증제를 폐지했다. 문제는 그것뿐일까?

시급 4,200원, 어떤 이에겐 등록금 또는 결혼자금

근무시간은 기사 마감이 끝난 오후 5시부터 매장이 문을 닫는 10시30분까지였다. 초보라 시급 4,200원에 배달 건당 200원씩 추가돼 하루 2만1,100원을 벌었다. 대부분 직원은 오전 11시부터 종일 일해 하루 5만원 넘게 벌었는데, 박모(20)씨에게는 꽤 소중해 보였다. "등록금에 보태려면 어쩔 수 없어요. 집도 어려운데 부모님은 언제 일을 관두실지도 모르고." 두 달 방학 동안 그는 약 150여 만원을 모았다고 했다.

주말에만 나오는 김모(30)씨는 20대 초반부터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오다 지난해에 한 중견회사에 취직했다. 그쯤 되면 주말에 쉴 법도 하건만 그는 "결혼하고 집 사려면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 어린 시절 좀 더 모아놓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주문 접수를 알리는 팡파르가 매장 안에 울리자 그들은 다시 심드렁하게 배달 가방을 집어 들었다.

속도 경쟁은 매장 안에서부터

점장으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점장은 최근 잇따른 배달 중 인명사고를 의식한 듯 30분 배달보증제부터 언급했다. "30분이 넘으면 손님에게 주는 2,000원은 회사에서 지불하니 걱정 마세요." 이튿날부터 주택가 배달에 나섰다가 주소를 헷갈려 30분을 넘기는 일이 예닐곱 번 있었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급여에서 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달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경쟁은 이미 매장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매장 곳곳에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지침들이 붙어있었다. 벽에 걸린 칠판에는 피자를 만들어 오븐에 넣는 시간 3분 이내, 오븐에서 나온 피자를 포장 후 갖고 나가는 시간 10초 이내라고 적혀있었다. 보통 피자는 주문 후 13분에서 15분 사이에 만들어지므로 배달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15~17분이었다.

모든 공정은 배달원이 다시 매장에 돌아와 직원용 컴퓨터에 '완료' 버튼을 눌러야 끝난다. 기준시간을 넘기면 점수가 깎이는 건 물론이고 본사에서 득달같이 경위를 따지는 전화가 걸려온다. 당연히 점장 이하 정규직들은 시간지연에 민감했고, 주문이 몰리는 주말엔 피자를 만들고 배달하는 아르바이트생들 대부분 눈치를 봤다.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위험천만한 도로, "신호는 적당히 어겨도 돼!"

여유 없이 매장을 나서지만 도로 위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한강을 지나는 다리 진입로 부근은 베테랑 배달원들마저 두려워하는 곳이다. 총 8차로 중 가운데 6차로는 다리에 들고나는 차선이고 나머지는 다리 아래쪽으로 좌회전해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이다. 2, 3차로에서 달리다 4차로로 빠지려 하면 트럭과 버스가 쌩쌩 달리는 통에 그대로 올림픽대로로 들어서기 십상이었다. 다리 건너 왕복 3㎞를 갔다 올 뻔한 상황도 여러 번 있었다.

신호에 걸려 멈추지 않는다면 차들은 최소 시속 70~80㎞ 이상으로 질주했고, 배달원들은 사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7대의 오토바이를 총동원해도 주문을 제 시간에 소화하기 힘든 주말엔 그만큼 신호위반과 과속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높았다.

업체는 교통법규 준수를 등한시했다. 업체 관계자는 "주문 밀렸을 때 신호 다 지키면 언제 배달하겠냐, 본인이 안 다치는 선에서 적당히 위반할 건 해라"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의 안전의식도 높을 리 없었다. 왕복 6차로에서 유턴 신호를 기다리는 기자에게 "굳이 맞은편에 차도 없는데 서 있느냐"고 먼저 중앙선을 가뿐히 넘는 배달원도 있었다.

사실 배달 목적지까지 교통신호를 다 지켰을 때, 매장에서 꽤 떨어진 아파트단지나 상가 등은 30분 내에 닿을 방도가 없었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바람에 늦었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직원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본적으로 신호 및 차선 위반을 해야 시간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신호를 위반하다 여러 번 사고를 당할 뻔했다. 떨리는 맘을 진정하고 식은 땀을 쏟으며 겨우 시간 안에 도착(28분 정도)해도 늦었다고 우기며 값을 깎아달라는 고객도 있었다. 야속했지만 점장이 말한 대로 "쿨 하게" 2,000원 할인을 해줬다.

30분 배달보증제는 차츰 사라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바라본 문제점은 그것의 존폐와는 별개였다. 매장의 "빨리빨리" 공정, 직원들의 '안전불감'과 업체의 은근한 부추김, 위험천만한 도로상황 등이 남아있는 한 불행한 사고는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김현수 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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