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건설현장 뿐 아니라 관 주도 공사에서도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중소기업을 멍들게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대기업 계열 유통점들은 여전히 중소 납품업체들에게 단가를 낮추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부가 연일 동반 성장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관과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하는 중소기업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충남 천안에서 철강업체를 운영하는 박 모씨는 몇 달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구청에서 발주한 시설물 공사에 철근자재를 납품했는데 반 년이 넘도록 공사대급 1,000여 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 씨가 참여한 공사는 구청 공사를 따낸 A사(원도급)가 B사(1차 하도급)에 맡기고, B사는 이를 현장소장인 C씨(2차 하도급)에게 다시 구두로 하청을 줘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B사가 부도 나자 박 씨는 공사대급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박 씨는 "구청이 발주한 공사이니 안심하라는 현장소장의 말을 믿고 납품을 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답답해 했다.
관급공사인데도 다단계 하도급에 구두계약이라는 고질적인 관행이 그대로 답습되면서 박 씨와 같은 피해자가 생긴 것이다. 박 씨는 원도급 업체인 A사를 찾아가 하소연 했지만 '공사대금을 하청업체인 B사에 지급했다'는 대답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사를 발주한 구청도 찾아가 봤지만 돌아온 것은 "하도급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말뿐이었다.
중소기업들은 박 씨 사례를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도 납품단가 인하 요구 등 불공정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일 대규모 소매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납품업체의 26.7%가 '단가 인하 요구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의 불공정 거래 방지 대책에 대해 '효과가 없다'고 답한 업체가 45.3%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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