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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고립 멸종… 젊은 작가들이 엮은 '일곱 빛깔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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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고립 멸종… 젊은 작가들이 엮은 '일곱 빛깔의 비'

입력
2011.02.2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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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내리는 동안에만 비일 것이었다. 그친 뒤에 비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닐 것이었다”(김숨 ‘대기자들’중).

비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단지 물이 될 뿐이라면 비는 대지에 스며들지 못한다. 자연의 순환계에서 이탈해 ‘허공 속 추락’으로만 제자리 걸음만 할 뿐. ‘비’를 이렇듯 자폐적이고 단절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는 것이 요즘 젊은 여성 작가들의 지배적 상상력인 듯하다.

김숨씨의 이 단편소설은 요즘 문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 7명이 참여한 테마소설집 (열림원 발행) 속의 한 편이다. 이 소설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다. 참여 작가 김미월(34) 김숨(37) 김이설(36) 윤이형(35) 장은진(35) 황정은(35) 한유주(29)씨는 “향후 한국 문단의 모든 상을 휩쓸 작가”(김도언 열림원 편집장)라는 소개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앞으로 기대주로 평가받는 여성 작가들이다. 한유주 황정은씨는 각각 2009년과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꽃 피워 가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현 주소에 대한 맛 보기이긴 하지만 뷔페식으로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특히 이 기대주들이 오랜 세월 문학의 벗이자 수많은 이미지의 원천이었던 비를 어떤 식으로 소화해 내는지를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 출판사 측은 작가들에게‘비’(rain)라는 단어만 던져 놓고 맘껏 이야기를 구성토록 했다.

결과물은 어떻게 나왔을까. ‘일곱 색깔의 무지개’라고 할 만큼 제 각각의 이야기를 엮어 내며 스타일상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긴 하는데 밑감으로 사용된 비의 이미지는 어딘지 닮아 있다. 추락, 고립, 멸종, 쳇바퀴 맴돎 … . 죽음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 있는 것이다.

서로 간의 의사가 엇나가며 끊임없이 삶이 지연되는 풍경을 그린 ‘대기자들’의 비는 말할 것도 없고, 황정은씨의 ‘낙하하다’는 아예 3년 동안 추락하는 남자(혹은 비)의 독백이다. 한유주씨의 ‘멸종의 기원’에서도 빗방울은 지상으로 떨어지는, 수백 수천 수만의 죽은 자들로 연상된다. 장은진씨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에서는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남성과 비가 겹쳐 있다. 자연의 순환에서 이탈한 비는, 곧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한 도시인의 삶을 비추는 셈이다. 이런 음산한 고립은 등장인물들마다 내밀한 상처와 비밀을 갖고 있는 것과 연관돼 있다. 장은진씨의 단편에선 성 정체성,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에선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 김미월씨의 ‘여름 팬터마임’에선 학창 시절의 표절 등이 도사리고 있는데 드러낼 수록 덧나는 상처 덩어리들이다.

소설집은 그러니까 비를 촉매로 소통 불능의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지만 일견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마저 그에 짓눌려 폐쇄회로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기대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이들의 자의식이다. 예컨대 장은진씨의 단편에서 고층 아파트의 남자와 지붕 위에 사는 주인공을 이어 주는 것은 티슈 속 메모다. 김미월씨의 ‘여름 팬터마임’에선 네루다의 시를 베껴 고교 시절 문학상을 받은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고백하지만 남자친구의 반응은 이렇다. “소설 같은 얘기네. 그래, 넌 소설 쓰면 잘 쓰겠다.” 그러니까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서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통로가 희미하게나마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허구의 힘을 빌린 소설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것 같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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