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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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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잠자리

입력
2011.02.2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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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삼월(1933~2009)

너도 리상과 신념이 있는줄을

내 철부지 그 시절에 알았더라면

너의 꽁지에 실을 매여

하늘에 날리며 놀지 않았으리

손가락을 머리위에 올리뻗치고

너를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으리

햇살 가득한 푸른 하늘이 좋아

해종일 날고도 날고만싶어서냐

너는 날개를 편채 풀잎에 앉아

밤이슬 맞으며 한밤을 보내거니

달빛 드리운 아늑한 꿈결에도

너는 리상의 푸른 하늘 날고있으리

아, 너의 신념 그 얼마나 굳으면

죽어서도 날개를 접지 않느냐!

● 리삼월은 본명이 리경희인 재중동포 시인이다. 1988년 이 융성출판사에서 세 권 출간되었다. 재중동포 시인들의 시가 궁금해 시선집 세 권을 구입해 읽다가 리삼월의 시를 만났다. 시들이 좀 옛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된 것인지 그 후 책들을 분실하고 출판사 이름도 잊어먹고 해서 까마득 리삼월이란 이름도 잊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한 어느날, ‘잠자리는 죽어서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는 (조금 변형된) 시구가 떠올랐다. 분명 연변 시인의 시에서 봤었는데 누구의 시구였지. 인터넷으로 점검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시구에 인용표를 붙여, 희망을 갖고 살라며 청소년들이 내미는 책에 싸인을 해주기도 했었다.

시인과 시집과 시를 떠난 시 구절 하나가 내 가슴에 오래 살았다. 나는 며칠 전 드디어 출판사 이름을 알아냈고 국립도서관에 가서 책 세 권을 빌려 저자와 시도 만날 수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죽어서도 날개 접지 않는 잠자리를 온전하게 만날 수 있었다. 나이를 들며 처진 나의 날개를 만져보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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