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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16년 만에 엇비슷한 사건… 드라마 '싸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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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16년 만에 엇비슷한 사건… 드라마 '싸인'이 시작됐다

입력
2011.02.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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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두 사건이 있다. 젊은 부인 두 명이 각각 욕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 명은 한 살배기 아이와, 또 한 명은 한 달 후면 세상에 태어날 뱃속의 아기와 함께였다.

죽은 이의 남편은 둘 다 의사였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모두 살해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이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범행을 입증하려는 경찰과 이를 반박하는 당사자간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한 사건은 이미 '법적으로' 결론이 났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이는 없는 미제의 사건이 됐다. 1995년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 얘기다.

또 한 사건은 진행 중이다. 지난달 14일 발생한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이다. 경찰은 24일 남편 백모(31)씨를 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남편이 범인이라는 건 '아직' 아니다. 벌써부터 미제 사건이 될 거라 점치는 이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주검의 발견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된 남편

#1995년 6월 서울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관은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 집주인 B(30)씨와 어린 딸(1)이 욕조에 잠긴 채 숨져 있었다. B씨와 딸의 목에는 끈에 의한 목졸림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은 "누군가 모녀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고의로 불을 질렀다"고 판단했다. 현관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귀중품이나 현금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두 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평소 B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테리어업체 사장. 하지만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당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두 사람을 2박3일간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회고했다.

수사팀은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오전 7시께 출근한 남편은 "아내와 딸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욕실에서 만삭의 의사 부인 박모(29)씨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시신을 발견한 이는 남편 백씨였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있던 백씨는 "딸과 연락이 안 된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는 '손톱에 긁힌 듯한' 상처가 있었다.

박씨 가족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남편은 욕조에서 미끄러져 죽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사고사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를 경찰에 통보됐다. 경찰은 남편 백씨를 긴급 체포했다. 부인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였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이 범인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한 것. '위험한 독신녀' 등 영화 제목의 리스트였다. 경찰은 "영화의 살해 수법과 부인의 죽음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고 말했다.

살해 동기도 드러났다. 죽은 부인과 인테리어업체 사장과의 불륜 과정이 드러났다. 부인의 병원에서 연서가 발견됐다. '남편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남편이 범인임을 확신했다.

과학적인 증거도 속속 나왔다. ▦사체에 나타난 반점 및 강직상태 ▦피해자의 소화상태에 대한 국과수의 부검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화재발생 시각 추정 결과 등으로 범행이 오전 7시 남편의 출근 시각 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더해 ▦거짓말탐지기 반응결과 ▦딸의 우유병 및 식기 상태 ▦제3자의 침입에 따른 범행 가능성 희박 등이 증거물로 확보됐다.

#경찰은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에 대해선 남편 백씨가 부부싸움 도중 격분에 못 이겨 부인을 살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시신의 손톱에서는 남편의 DNA가 검출됐다. 마침 남편의 얼굴과 팔에는 여러 긁힌 상처가 있었다. 남편은 "피부병 때문에 긁은 상처" 혹은 "스트레스 때문에 자해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반항의 흔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남편의 옷 소매와 안방 침대시트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다. 옷은 부부의 피, 침대는 부인의 피였다.

평소 다툼이 잦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백씨는 전문의 시험을 합격하지 못하면 2월부터 지방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해야 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부인은 백씨의 전문의 시험 합격을 누구보다 바랐다. 하지만 백씨는 시험 당일(사건 발생 전날)에도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했다. 경찰은 "이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당일 싸운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부검 결과 시신의 목에서 발견된 손자국과 내부출혈 흔적이 나왔다. 사고에 의한 질식이라는 남편 측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증거였다. 욕실에서 발견된 혈흔 역시 사망 후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욕조에서 미끄러져 사망한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

#치과의사 모녀의 살해범이 남편이라는 경찰의 증거는 법정에서 무참히 무너져 버렸다.

남편 측 변호인은 경찰이 내세운 증거의 불확실성을 증명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법정에 스위스의 법의학 교수까지 내세웠다. 해당 교수는 "시반 등을 통해 모녀의 사망시각을 오전 7시 이전으로 추정하는 건 오차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실제 아파트 모형을 만들어 화재 실험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화재 시뮬레이션 결과, 밖에서 연기를 확인하려면 두 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고 화재 신고 시각 등을 볼 때 오전 7시 전에 화재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 불을 지르고 5, 6분 후에도 밖에서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변호인의 반증은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줬다. "남편이 부인을 살해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8년간의 법정 공방은 그렇게 2003년 2월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일단락됐다.

#만삭의 부인을 살해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남편 백씨는 강하게 부정했다. 백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임태완 변호사는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는 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찰이 확보한 증거들이 결국 정황 증거라는 지적은 수사 과정 내내 제기됐다. 경찰 역시 이 부분을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둘 만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방안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진술이 없다면 알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남편의 자백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 기간에 현장 검증을 다시 해 현장 증거를 확보하는 한편, 전문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백씨의 심리를 분석하고, 자백을 이끌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앞으로 남편 쪽에서는 경찰의 증거를 깨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할 것이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게 아니고 경찰의 증거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OJ 심슨 사건이 그랬고,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도 그랬다. 결국 두 사건은 모두 미제로 남았다"고 했다.

경찰과 백씨 측간의 공방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엄격한 법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과연 범인이 밝혀질 것인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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