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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의 '과학과 사회, 그리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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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의 '과학과 사회, 그리고 한국'

입력
2011.02.2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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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도 허구일 수 있다, 과학자도 바보일 수 있다"

"앞으로 학문과 대학이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19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학문과 대학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300여 좌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귀를 쫑긋하며 경청한다.

우리의 일상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강당에는 강연 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의 하나로 2월 5일 시작한 그의 강연은 '과학과 사회, 그리고 한국'을 주제로 3월 5일까지 토요일마다 계속된다.

과학지식은 항상 객관적인 진리인가

5일 강연에서 오 이사장은 "과학지식은 어떤 조건에서도 통용되는 객관적 진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과학지식은 정확하고 명백하며 입증가능한 지식으로, 사회문화적 영향에서 초연한 보편타당한 진리로 흔히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구성주의 과학자 등은 과학 이론이나 해석이 계급갈등, 이데올로기, 과학자 개인의 관습과 위계질서 혹은 이해관계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밀리칸이 자신의 믿음에 맞는 실험 결과만 취사선택하는 등 적지 않은 경우 과학지식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 이사장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같은 병을 두고도 원인 해석과 처방이 다르지만 실제로는 둘 다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과학적 진리가 항상 하나일 수는 없고, 특정 과학이론이 늘 객관적 진리일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재과학자와 바보과학자

12일 강연의 주제는 천재만 과학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세정 이사장은 천재 과학자로 뉴턴, 아인슈타인, 파인만을 거론했다. 뉴턴은 20대 초반에 관성의 법칙, 작용_반작용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의 개념을 정리했다. 그가 쓴 에 대해서는 "적어도 7년은 공부해야 내용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류 역사상 신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한 사람"이라는 칭송도 받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의 인물로 선정한 아인슈타인은 26세의 나이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 학자가 세계에 12명뿐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천재의 뇌가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파인만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로 인정받는다. 동료 다이슨은 "파인만은 100% 천재에 100% 익살꾼이며 생각과 농담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오 이사장은 그러나 이들처럼 천재만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도리어 "우직하고 바보스럽게, 남이 파지 않는 우물을 오랫동안 파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 보기로 든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 일본의 고시바 마사토시(85)다.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고교 진학이 1년 늦었고 고교 때 물리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도쿄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졸업 성적은 꼴찌였다. 같은 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또 다른 과학자 다나카 고이치(52)는 시골 고교를 졸업하고 도호쿠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성적이 하위권이었으며 졸업도 1년이 늦었다. 졸업 후 소니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중견기업인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해 그곳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쉬지 않고 매진해 노벨상을 받았다.

멘델은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수도사가 됐다. 수도원에서 무려 13년 동안 완두콩을 이용, 교배실험을 한 결과 유전법칙을 발견했지만 당시에는 그 결과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직한 연구는 훗날 빛을 보았고 그는 유전법칙의 대가가 됐다.

미래의 학문, 미래의 대학

19일 강연에서 오 이사장은 미래 학문과 대학의 방향을 전망했다. 인종갈등, 인구과잉,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적 지식이 통합돼야 하므로 미래에는 지식의 융합 또는 통섭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또 그에 맞춰 실제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 또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피터 드러커가 "30년 후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라고 1997년 선언했듯 통신기술의 발달 등으로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대학 교육의 형태가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매사추세츠공대가 강의를 공개하고 온라인 피닉스대에서는 1만7,000명 이상의 강사가 인터넷으로 강의하는 등 그런 조류가 실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문에서 스승과 제자의 대면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캠퍼스가 존속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대학이 인맥을 쌓는 공간"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라도 지금과 같은 형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은 노벨 과학상을 받을 수 있나

26일 강연의 주제는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 가능성이다. 오 이사장은 한국에서 기초과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20~25년 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노벨 과학상이 대개 20~30년 전 성과를 시상한다는 점도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안드레 가임 등이 6년 전 성과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보면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다. 한국은 과학 발전 속도가 빠르고 정부의 연구지원 의지가 강하므로 10년 안에는 수상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오 이사장은 전망한다.

■ 한국연구재단의 인문강좌를 들으려면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는 일반인이 들을 수 있는 대표적 인문강좌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취지로 2007년 10월 1기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11월 13일부터 4기가 진행 중이다. 장소는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

4기 강좌의 경우 오세정 이사장의 강연이 끝나면 3월 12일부터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세계화와 반세계화_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묻는다' 가 4월 9일까지 진행된다. 그 뒤를 이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배용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정진흥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등의 강연이 차례로 준비돼 있다. 강사와 강연 주제 등 중요 사항은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등 9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결정한다.

강좌에 참가하려면 홈페이지(http://hlectures.nrf.go.kr/)나 전화(02-739-1223)로 신청하면 된다. 강연 주제가 바뀌는 5주마다 접수를 받는데 인기가 높은데다 선착순 마감이어서 서둘러야 한다.

■ "과학, 평생학습 통해 익혀야"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사회에 미치는 과학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과학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_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식량, 인구, 방사성폐기물, 광우병, 지구온난화, 줄기세포 등 우리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과학과 관련돼 있다. 그런데 방사성폐기물장을 우리 지역에 유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 과학 문제와 관련한 결정은 정부도, 과학자도 독단적으로 할 수 없으며 결국 국민이 해야 한다. 국민이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과학 지식과 정보를 가져야 한다. 물론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과학자들이 제공하겠지만 그것은 판단을 위한 자료일 뿐이다."

_우리 국민의 과학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과학도 평생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교 시절 암기 위주로 공부하면서 과학에 질려버린 사람이 많다. 그들은 성인이 된 뒤 과학 지식을 습득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고교 때 암기할 내용이 많은 생물을 싫어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따로 생물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 때 생물을 좀 공부했더라면, 요즘 각광받는 생물물리학도 연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황우석 사건을 계기로 줄기세포에 대한 지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과학 지식 습득을 위한 기본 능력은 갖고 있다고 본다."

_일반인이 과학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과학책을 읽는 것이다. 외국에는 우주의 기원 등 대중용 과학책이 많고 그것들이 많이 읽힌다. 하지만 우리나라 독자는 그런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다양한 형식으로 대중용 과학책을 많이 내야 한다. 신문 등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풀어주는 기사나 다큐멘터리가 많아야 한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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