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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善漁夫非取' 카다피

입력
2011.0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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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쓴 맛을 남기는 한자어를 접했다.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라고, '착한 어부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뜻은 그럴 듯한데, 발음대로 하면 '선 오브 비치(son of a bitch)'라는 영어 욕설로 들렸다. 이 한자어를 띄운 사람도 뜻보다는 발음에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특정 정치인을 비틀어서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이 한자어를 읽을 때 마침 TV에서 무하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갈색 전통의상에 터번을 쓰고 주먹을 휘두르며 연설하는 장면이 나왔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 내 조국, 내 조상의 땅에서 순교자로 죽을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어나 쥐(반정부 시위대)를 잡아라. 혁명! 혁명! 혁명!"

혁명 외치며 백성 삶 외면

그의 얼굴에 나타난 광기를 보면서 '善漁夫非取'라는 한자어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수한 전통의상을 고집하며 혁명을 부르짖는 그의 외양만 보면,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영락없는 착한 어부다. 하지만 자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서슴없이 내리는 잔인성, 혁명을 외치면서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외면하는 비정함, 청렴을 내세우면서 자기 자식들은 천문학적인 축재를 하는 부도덕성을 보면, 그는 착한 어부가 아닌 그야말로'선 오버 비치'였다.

42년 전 1969년, 27세의 젊은 장교 카다피가 왕정을 무너뜨릴 때만해도 국민들은 그의 숭고함과 진정성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 백성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그의 아홉 자녀들은 수백억 달러의 이권을 챙겼다. 카다피가 뭐라고 설파하든 일자리 없고, 집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런 모순과 거짓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리비아에 앞서 튀니지도 그랬고 이집트도 그랬다. 수십 년 계속된 독재 속에서 국민의 삶이나 자유는 전혀 진전되지 못했고, 오로지 독재자의 자녀, 친척들만 상상을 초월하는 이권과 재산을 축적했고 권력을 누렸을 뿐이다. 체제가 어찌됐든, 종교가 무엇이든 나라는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이었다. 왜 이제서야 봉기가 일어났는지가 의아스러울 정도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 시절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했던 인사들, 또 그들을 뒷받침했던 국민에 대해 경건함을 가져야 할 듯싶다. 단 거기서만 멈춘다면, 또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도취된다면 그것은 하수(下手)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떤 지도자를 가져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 지도자가, 또는 차기 지도자 후보들이 말로는 나라를, 국민을, 역사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기 식구나 친인척, 그리고 자기 고향, 출신고교, 출신대학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말로는 서민을 외치면서 정책은 있는 자들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따져볼 일이다. 한 1년 만 넉넉하게 살아도 과거의 어려움을 잊는 게 인지상정인데, 50대 이상 누구나 겪었던 어린 시절의 가난을 꺼내 서민편이라는 착시를 이끄는 것은 아닌지도 자세히 볼 일이다.

지도자 언행일치 살펴야

결국 우리는 그 모든 점에서 지도자는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고, 국민을 진정으로 위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쉬운 상식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지난 대선 때, 지난 총선 때 누군가를 지지하면서 기대했던 각각의 삶, 나라의 모습이 지금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해보자. 혹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에게도 카다피의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재삼 재사 살펴보자. 그래야 페이스북 등에 퍼지는 선어부비취 같은 말들이 어두운 은유의 블랙유머가 아니고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가는 농담이 되지 않겠는가.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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