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드디어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첫 눈이 내렸다. 63년만의 가장 늦은 첫 눈이라고 한다. 당일 중국의 농업정책을 책임진 농업부 홈페이지에는 한장푸(韩长赋) 장관의 한시(漢詩) 한 수가 실렸다. ‘첫눈(初雪)’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 장관은 풍년의 징조인 겨울 눈이 늦게나마 내렸음을 기뻐하면서 총력을 다해 가뭄과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를 보면서 한 편에서는 정부 부처의 보도자료에 한시를 싣는 중국인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졌지만, 다른 편에서는 가뭄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하면 이런 행보까지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중국의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안후이(安徽) 등 8개성은 3개월 이상 비가 오지 않아 60년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이 지역은 중국 밀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곡창 지대이다. 중국은 일부 곡물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자급자족 상태를 유지해오면서 식량자급도가 95%를 넘어서는 나라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육류와 유제품 소비증가에 따른 사료수요 확대로 대두, 옥수수 등 곡물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 가뭄으로 3대 주요 곡물의 하나인 밀마저 생산차질을 빚을 경우 중국 정부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의 밀 가격은 재배 면적 축소와 생산비용 증가에다 가뭄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 우려까지 겹치면서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밀가루 소매가격이 작년 11월의 kg당 3.57위안에서 3개월만에 3.94위안으로 11.2%나 상승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중국의 가뭄으로 인한 밀 생산 감소가 중국만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 캐나다 호주의 자연재해 등으로 2010년 중 국제 밀 가격이 45%나 폭등한 상태. 중국마저 밀 수입을 늘릴 경우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하는 건 자명하다. 일부에서는 이번 가뭄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로 중국이 올해 밀 수입량을 300만톤까지 늘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수입량(3만톤)의 100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미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올해 1월 곡물가격지수는 245로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행보는 향후 세계 곡물시장에‘가중한 짐에 짓눌린 낙타의 등에 지푸라기 하나를 더 올려놓음으로써 결국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불상사(the last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우려가 정말 현실화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우선 중국의 가뭄 피해면적이 한 때 773만㏊에 달하였으나 정부의 인공 강설과 강우 그리고 적극적인 관개시설 증설 등으로 2월 중순에는 전체 밀 재배 면적의 37%인 670만㏊까지 줄어 들었다.
둘째, 밀의 생장기간이 10월에서 이듬해 6월까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밀의 본격적인 생육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수확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기인 3∼5월의 기후가 중국 밀 생산을 좌우할 것이므로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셋째,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3∼5월까지 가뭄이 계속되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다고 해도 중국이 대규모로 밀을 수입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의 밀 비축량이 6,000만톤 내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곡물가격 안정이 물가안정을 좌우하고 사회안정의 핵심요소라는 것을 중국 정부의 지도자들은 너무나 잘 안다. 2,200여회의 인공강우와 가뭄대책 그리고 곡물수급 안정을 위한 129억위안의 긴급자금 투입 등은 최근의 가뭄을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시각을 말해주는 작은 사례이다. 결국 중국은 지푸라기 하나를 낙타 등에 더 올려놓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재현 한국은행 북경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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