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의 용두레우물에 묻힌 고구려 성곽/김호림 지음/글누림 발행·428쪽·2만4,000원
중국 옌벤(延邊)에 산재한 고구려 성곽 답사기다. 저자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재중동포로 책의 첫머리는 “내가 살던 고향마을인 연길의 소영자가…”라는 말로 시작된다. 고고학적 정밀성을 떠나 저자와 답사지의 긴밀도만 따진다면 첫손에 꼽을 만하다. 기와조각 따위의 옛 흔적에 대한 기록보다는 현지 주민과의 허물없는 대화를 통해 채록한 구비의 역사가 값진 책이다.
2008년 한국의 평화문제연구소가 저자에게 고구려 성곽 답사 프로젝트 진행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하면서 이 책의 밑감이 만들어졌다. 50곳에 달하는 각각의 유적에 대한 답사기는 이 기관의 간행물인 통일한국과 중국의 연변일보 및 중국민족 등에 실렸다. 이후 2, 3차 답사로 수정ㆍ보완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겼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문헌기록에 없는 성곽을 찾아 처음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출판사는 저자의 어투를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고 살렸다. 그래서 종종 낯선 어휘와 맞닥뜨리게 된다. 함경도 사투리도 자주 등장한다. “예? 산성말임둥? 십 분쯤 올라가믄 됩꾸마” “마을을 벗어나믄 인차 보일겜둥”(268쪽). 책은 현지인의 눈으로 고구려의 영광을 더듬다가 이내 무관심 속에 훼손돼 가는 아픈 현장을 비춘다. “마을에서 토성을 거추장스럽게 여겼지요… 고성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 고물이 되어 있었다”(279쪽).
저자도 스스로 밝혔듯이 전문적인 글은 아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물음표를 단 밑줄을 긋게 만든다. 개인적 감상이 과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3년 반 동안 걷고 듣고 쓴 정성과 공력이 돋보인다. 옛 문헌 속의 한 줄 기록을 쫓아 찾아간 산성이 우묵한 평지의 벽돌공장으로 변해 버린 모습에 저자는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321쪽)고 썼다. 그런 무거운 여운을 가득 담은 책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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