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또는 피살로 최후를 맞을 것으로 보이는 무아마르 카다피의 심리상태는 어떠할까. 카다피는 서방의 간섭과 압박에도 42년간 권력을 나누지 않고 철권통치를 한 독선적인 인물인 만큼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모든 결정은 그의 심리상태에 달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속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길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는 연설뿐이다.
24일(현지시간) 카다피는 현 사태가 알 카에다의 모략이라며 "오사마 빈 라덴이 리비아인에 약을 먹이고 있다. 환각을 부르는 약을 먹고 국민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10대들에게 커피에 우유가 들어간 음료에 환각제를 섞어 먹여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력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엉뚱하게 알 카에다를 배후로 지목한 것에 대해 외신들은 이미 카다피가 이성을 잃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상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다피는 트리폴리 인근 자위야에서 벌어진 교전에 관해 "이제 이 사안이 알 카에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며 이해할 수 없는 인과관계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베두윈족인 카다피가 급한대로 공공의 적을 만든 것이라는 분석에도 설득력이 있다.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마당에 움츠러든 입지를 타파하고 추종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외부의 적을 급조했다는 것이다. 이날 연설 말미에 카다피는 "여러분이 서로를 죽이길 원하면 그대로 하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강경 진압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영국 BBC는 카다피가 몸을 숨긴 채 전화로 TV연설을 하고, 전화가 갑자기 끊긴 점에 비추어 볼 때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과장된 수사로 억지주장만 늘어놓은 연설도 불안한 심리상황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올리버 마일스 전 리비아 주재 영국대사는 아랍어는 풍부한 수사를 가진 시적인 언어라며, 서방세계에는 비논리적으로 보여지는 카다피의 발언이 아랍권에서는 이상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극단적인 언어를 즐겨 쓰는 카다피의 특성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카다피는 22일 연설에서 "나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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