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강인숙 지음/마음산책 발행·248쪽·1만6,000원
"이해인 수녀님. 제가 수녀님을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나 새삼스럽게 꼽아보니 어쩔 수 없이 그 힘들었던 1988년이 기점이 되는군요.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저를 인도해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달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2005년 이 수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박씨의 육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88년은 박씨가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해였고, 그는 이 수녀와의 만남을 통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낸 이 책은 문인 등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을 모았다. 작품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문인들도 편지는 선뜻 공개하지는 않는다. 이리저리 다듬어 분장하지 않은 개인의 내면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안, 미안! 아침에 자꾸 짜증(실상은 어제 저녁부터)만 부려서 미안했소, 허지만 당신 고집도 어지간하오." 플레이보이였던 소설가 조흔파는 어린 부인에게 걸핏하면 이런 사과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광수 조정래 박두진 김상옥 주요한 김광균 노천명 백남준 유치환 등 유명 예술가들의 편지가 들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저서를 받고 쓴 답장이거나 내밀한 편지 등이 주종을 이룬다. 편지마다 '편지를 말하다'는 글을 첨부해 작가가 살던 시대와 편지의 배경을 설명해 이해를 돕고 있다.
강 관장은 작가의 편지를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고 했다. 작품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내면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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