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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카다피/ 미사일 발사 등 잔혹한 진압 리비아 역사 최악오점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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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카다피/ 미사일 발사 등 잔혹한 진압 리비아 역사 최악오점 될 듯

입력
2011.02.2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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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유혈 시위진압으로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된 리비아. 비록 외세 침략과 철권통치로 비극의 현대사를 헤쳐온 리비아지만 이번처럼 민간인을 향해 미사일을 쏠 만큼 잔인한 시위 진압 사례는 역사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AFP통신은 25일 “리비아가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역사적 고비를 맞았지만 이번 반 카다피 시위와 이에 따른 진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이라 보도하며 리비아 현대사 100년의 질곡을 소개했다.

16세기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견뎌온 리비아는 1911년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다시 한번 식민통치의 설움을 감내해야 했다. 리비아는 1943년부터 2차대전을 전후해서는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분할지배 당했다. 리비아는 이후 1951년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 등 3개 지방의 연방왕국으로 독립하기까지 파시스트 통치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픈 역사를 이어왔다.

리비아는 1958년 원유채굴이 시작되면서 잠시 비극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무아마르 카다피가 1969년 당시 27세의 나이로 쿠데타에 성공한 후 철권통치를 이어가면서 뼈아픈 역사는 계속됐다. 1977년 헌법을 폐기하고 전인민회의 수장이 된 카다피는 본격적으로 독재에 박차를 가했고, 1986년 미국이 리비아 경제제재조치를 발표한 이후엔 ‘반(反)서방’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1986년 미국이 트리폴리를 공습하고, 카다피는 이에 맞서 1988년 팬암기 폭파테러를 조장하는 등 서방과 리비아의 전선은 첨예해졌지만 2003년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하는 등 대서방 화해 제스처를 취함에 따라 양측 관계가 완화되기도 했다.

한편 AFP 등 외신은 그 동안 서방 언론의 각종 가십거리 소재가 되어온 카다피 자녀들의 면면을 소개하며 이들을 비롯한 카다피 핵심 권력층이 분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23일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조언을 해주는 대부(代父)로 머물 것”이라 말했던 3남 사디에 대해 AFP는 “이탈리아 리그 프로축구 선수시절 금지약물 복용으로 속을 썩였다”고 묘사했다. AFP는 또한 23일 몰타로 비밀리에 망명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온 카다피의 딸 아이샤를 리비아의 ‘클라우디아 쉬퍼(독일출신 세계적 모델)’라 칭하기도 했다. 통신은 22일 레바논 도피설이 돌았던 5남 한니발에 대해선 “수행원 폭행으로 스위스와 외교분쟁을 일으켰던 인물”로 그렸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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