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내 마음의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잎이 짙어오것다.’이수복 시인의 ‘봄비’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비는 다 같은 비겠지만 봄비라는 말에 유독 흠뻑 젖는다. 봄비는 온다고 하지 않고 오신다고 한다. 봄비는 겨우내 마른 땅을 적시는 귀한 비이기에 높여 부르는 것이다. 봄비 다음엔 꽃이 차례차례 핀다. 꽃을 부르는 비이기에 고맙고 향기로운 비다. 봄비는 언 땅을 녹이기도 하지만 겨우내 언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비다. 봄비에 웅크린 한반도가 크게 기지개를 켤 것이다. 주말과 휴일에 봄비와 꽃샘추위가 예보되었다. 기상청은 최고 80㎜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봄비보다는 호우에 가까운 비다. 기다렸던 봄비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두려움이 인다. 구제역으로 여기저기 파묻어놓은 가축 매몰지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걱정이다. 묻을 때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묻기에 바빴던 우리시대의 무지한 죄를 심판할 것 같다. 아직 그치지 않은 붉은 피와 고통의 신음소리가 빗물을 타고 우리를 찾아올 것 같다. 물론 봄비 한 번으로 끝날 위험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 어떤 재난이 우리를 찾아올지 두렵다. 내가 하는 걱정보다는 정부와 매몰지역 주민들의 근심이 더 크겠지만 무사히, 안전하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촉촉이 마음 적시고 가던 이름 그대로의 봄비처럼, 봄비 조용조용 지나가시길.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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