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ㆍ1절이다. 일제(日帝)는 철저하게 우리를 억압했는데, 금융수탈 수법은 교활했다. 1930년대와 40년대 일제 강점기 풍경이 담긴 고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어머니는 현저동 꼭대기에 그 여섯 칸짜리 기와집을 천오백 원에 사서 반이 조금 넘는 팔백 원을 융자 받았던 것이다. 금융조합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남다른 교제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중략).. 그런 촌부가 은행문은 겁없이 두드릴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의 혜택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
그랬다. 일제는 담보만 있으면 그 가치의 절반을 대출 받도록 은행 문을 낮췄다. 일제가 그랬던 건 박 선생께서 지적한대로 '함부로 꾸어 쓰고 갚지 못하면 얼떨결에' 재산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빚으로 재산을 빼앗고, 우리를 통제했던 것이다.
2001년 6월. 기자는 지금은 저축은행인 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을 전담하고 있었다. 신용금고연합회 고위 관계자가 만나자더니, "금융 당국이 우리 돈 2,300억원을 떼어 먹었다. 곧 법원에 고소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고양이라면 신용금고는 쥐다. 그런 쥐가 고양이와 한 판 붙겠다니, 당연히 그 소식은 본보 2001년 6월18일자에 실렸다.
당시 금융 당국은 1997년말 예금인출 사태가 터지자 신용금고 업계가 지불준비금으로 쌓은 2,300억원을 끌어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었다. 또 '긴급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니, 업계가 2,300억원을 공동 부담하라'는 압력까지 넣고 있었다.
쥐와 고양이의 대결은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 당국과 신용금고 사이에 물밑 접촉이 이뤄졌는지, "고소장을 낼 것"이라던 신용금고 관계자가 며칠 만에 말을 바꿨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게 민망했던지, 그는 "당국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변명했다.
당국과 사이가 좋아진다는 게 뭘 뜻하는지는 9개월 뒤 확인됐다. 영세한 이미지의 '금고'대신 '은행'이란 이름을 쓰게 해달라는 업계 요구를, 그렇게 묵살했던 재경부가 수용한 것. 신용금고 사장들이 '이제는 은행장이 된 것 아니냐'고 좋아하던 기억이 새롭다.
일제의 수탈과 10년전 경험을 포개어 얘기한 건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2002년 명칭 변경에서 시작됐다'는 지적(본보 2월28일자 17면) 때문이다. 그 지적이 맞다면, 저축은행 사태는 10년전 금융당국이 빚에 포획되며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10조원 이상이 필요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당국은 이번에도 은행과 보험업계에 손을 벌리고 있다. 예보기금의 공동계정 설치에 반대하던 두 업계가 최근 찬성으로 돌아섰다는데, 당국이 이번에 진 빚을 '통큰 특혜'로 갚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된다.
세계에서 주식 투자를 가장 잘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의 투자 철학은 '빚지지 말라'이다. 버핏 회장이 21일 방한한다는데, 정부에서도 이 참에 그를 만나려고 분주한 모양이다. 버핏 회장이 저축은행 사태의 전말을 안다면, '정책에 참고할 좋은 말씀 부탁한다'는 당국자의 요청에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빚지지 마세요.'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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