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귀국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정국의 뇌관을 건드리는 파괴력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내부의 인사청탁 관행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연계된 각종 대형 의혹이 한 전 청장을 둘러싸고 난마처럼 얽혀 있어 정치권도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일단 검찰은 한 전 청장을 상대로 이른바 '그림 로비'와 국세청장 연임 로비,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에서 빚어진 직권남용 논란 등 3가지 의혹을 중점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참여연대와 민주당이 고발한 내용 위주로 수사 대상을 압축한 것이다.
검찰은 우선 한 전 청장이 국세청 차장 시절 청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림 로비를 했는지, 청장 연임을 위해 현 정권 실세들에게 청탁을 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한 전 청장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초 인사청탁 목적으로 직속 상관이던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고(故) 최욱경 화백의 고가 그림인 '학동마을'을 상납한 혐의로 고발 당했다.
한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12월 이상득계로 분류되는 여권 실세들에게 골프 접대 등을 통해 청장 연임을 위한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정치권 로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가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검찰 수사의 수위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수사팀 관계자가 24일 "한 전 청장이 이상득 의원과 골프를 친 사실은 없다"고 서둘러 선을 그은 것은 그만큼 연임 로비가 휘발성 강한 소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까지 이어진 국세청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에서 한 전 청장의 역할이다. 한 전 청장은 2008년 7월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관할기관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최정예 요원이 포진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맡겨, 야당으로부터 표적조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국세청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한 전 청장이 당시 태광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 국세청 안팎에서는 "정권 실세에 잘 보여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한 전 청장이 당시 세무조사를 사심을 갖고 했는지, 정상적인 직무 범위 내에서 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 청장의 귀국으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사람은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그는 현 정권과 연고가 없었던 한 전 청장을 정권 실세들과 이어준 연결고리 역할을 했지만 나중에 한 전 청장과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림 로비 의혹을 처음 제기해 한 전 청장을 낙마하게 만든 이도 바로 안 전 국장이다.
안 전 국장은 국세청이 2007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를 할 때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과 관련한 문건을 발견했고 이로 인해 자신이 한 전 청장에게서 퇴임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통해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은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 난 바 있지만,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를 통해 이 의혹이 다시 불거질 경우 정권을 뒤흔드는 사안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은 "고발 내용과 안 전 국장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것 같다"며 아직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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