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식량 부족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계속되는 만성적인 문제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따른 배급체계 문제와 재고 부족 등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의 수요와 공급량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부족한 식량은 100만톤 가량으로 추산된다. 3~4개월치 식량이 부족한 것인데,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예년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통일부가 추산하는 연간 북한 식량 수요는 540만톤 정도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올해 북한의 식량 공급은 전년보다 3.1% 증가한 448만톤이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올해 북한은 작년보다 덜한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배급체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재고마저 바닥나면서 식량 부족 사태가 과거의 양상과 다르다는 데 있다. 북한에서 고위직이나 군인 등을 제외한 일반 주민은 식량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배급 순위가 낮아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하는 북한 주민을 800만명으로 추산했다.
이 중에서도 시장 참여 기회가 없어 배급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어린이, 노인 등 200만명은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권 부원장의 분석이다. 국제 구호단체들이나 외신들이 전하는 북한의 식량난 실태와 구호 문제는 주로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같은 북한 사회의 양극화는 식량 문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에서 지역간, 계층간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화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양극화 현상은 군대에서도 나타나, 자원이 풍부한 부대와 그렇지 못한 부대 등으로 나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후방 부대에서 식량 문제로 항명사태가 발생한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북한의 식량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은 점도 올해 식량 사정을 어렵게 할 요인이다. 북한은 2008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지원이 뚝 끊기면서 부족한 식량을 비축한 재고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고마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우려되자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에 잇달아 식량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춘궁기에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북한이 미리 외교관을 동원해 식량 확보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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