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불어 닥친 폭설은 춥고 배 고픈 사람에게는 더 가혹하다. 한파 속에 외롭게 투병하던 시나리오 작가는 "쌀과 김치를 더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호소를 월셋방 앞에 걸어 놓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작가가 지병인 갑상선 기능항진과 췌장염을 치료 받지 못하고 굶주린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고했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이 문제
'격정 소나타'로 국제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던 고인에 대한 뒤늦은 추모 열기와 함께 논란이 설 직후 뜨거웠으나 벌써 잊혀지고 있다. 전국 영화산업노동조합은 영화계의 비합리적 임금지불체계로 인한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소설가는 직접 사인은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지적하면서, 진실을 외면한 채 무리하게 아사(餓死)로 몰고 가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촉망 받던 젊은이를 나 홀로 죽음으로 내 몬 것은 바로 부실한 사회안전망이다. 고인은 물론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G20 정상회담을 통해 국격이 높아졌다는 국가에서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의료보호와 생계보호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일한만큼 그에 합당한 임금을 제 때에 받고, 가난한 작가의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영화산업의 구조도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고 싶을 만큼 믿기 어려운 사건들은 그치지 않는다. 아홉 살 소년이 개에게 물려 죽은 뒤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된 사건도 있었다. 소년은 부모의 이혼으로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손자가 먹을 수 있도록 1주일 치 밥을 지어 밥통에 넣어둔 채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했다. 전기 담요를 끄지 않고 다녀 화재의 위험이 높았으나, 주변에 민가마저 없어 부탁할 이웃도 없었다.
어린 아이의 죽음을 놓고도 어른들은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학교는 시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로 방임 아동을 위한 조치를 의뢰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시청 담당 공무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서류상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소년은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존권은 물론 최소한의 사회적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안타까운 나 홀로 죽음의 잇단 발생은 허술한 사회 안전망의 빈 틈을 통해 선별적 복지의 현실을 보여 준다.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이 개입할 수 있는 대상은 기초생활보장 수급가정이며, 1인당 담당하는 평균 수급자는 400명이 넘는다. 따라서 법정 자격이 없는 클라이언트를 공무원이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을 현재보다 8배 이상 많이 배치해야 나 홀로 죽음을 방지할 수 있고 맞춤형 복지도 가능하다.
빈 틈새 촘촘히 메워야
올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0주년이 된다. 그러나 부양능력이 없는 부양의무자의 존재 등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인해 410만 명이 제도적 보호망의 성긴 틈에 빠져 있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기초생활수급권자보다 더 낮다. 현행 제도는 부양의무자가 있는 사람은 그 부양의무자가 부양할 형편이 안 되어도 부양의무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장애인 자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이 가로막히는 현실 때문에 부모가 죽음을 선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현실을 돌보지 않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는 국민의 대다수가 아동 장애인과 같은 근로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서둘러 폐지돼야 한다. 또 다른 나 홀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허술한 사회안전망의 빈 틈새를 가능한 촘촘히 메워야 한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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