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으나 봄과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을 뒤집어 본다. 봄이 채 오지 않았는데 꽃에 대한 얘기들이 많다. 언뜻 '꽃은 피었는데 봄은 오지 않았다(花開不來春)'는 말을 만들어 본다. 올해 벽두 지구촌의 최대 화제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이다. 이어 이집트를 뒤엎고 리비아까지 삼키려 들고 있는 이 파도를 '재스민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튀니지의 나라꽃이기 때문이다. '수줍음과 관능미'라는 꽃말을 간직한 재스민이 살벌한 시민혁명의 상징이 되었다니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참으로 알맞은 의미이기도 하다.
■ 재스민 꽃은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선 한여름에야 많이 볼 수 있으나 북아프리카 지역엔 수시로 피고 질 터이다. 비록 튀니지의 나라꽃이라지만 재스민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중국이다. 15억 중국인이 차(茶)와 향료로 애용하고 있지만, 요즘엔 "참 좋은데…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라며 피해 다니는 모양이다. 중국어로 '무얼리(茉莉)'라 부르는데 공안들이 휴대폰이나 인터넷에서 이 말이나 문자를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수줍은 꽃 이름 하나가 세계 최강의 정권에 이다지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
■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이어 봄이 따라오는 것이 대세인 모양이다. 달리 보면 꽃들의 반란으로 여길 수도 있을 터인데, '꽃은 피고 있으나 미처 봄이 오지 않은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마침 어제 국립기상연구소 이경미 연구원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반도의 매화가 10년에 4일씩 빨리 피고 있다고 한다. 매화만이 아니라 벚꽃과 배꽃은 2.1일, 진달래는 1.8일씩 먼저 피어난다. 1960년 이후 지금까지의 개화시기를 분석한 그는 식물의 개화 및 발아 시기는 지구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데 중요한 선행지표라고 강조했다.
■ 꽃의 반란이 시작되면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땅의 변화를 읽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논문은 그러나 땅의 변화를 오래도록 감수하려는 꽃들의 인내심도 설명하고 있다. 뿌리엔 이미 겨울이 왔는데도 최대한 오래 단풍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최근 10년 사이 가을 단풍의 절정일이 4일 정도 늦어지고 있다. 봄이 올 것을 예상하여 더 일찍 꽃을 피워주는 배려, 가을이 저물어 가지만 되도록 늦게까지 묵묵히 살아가는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서 봄을 예고하는 꽃들이 마구 피어나는 이유를 알아야 할 곳이 어디 북아프리카뿐이겠는가.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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