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떠나 섬진강을 거슬러 지리산 자락으로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밭을 일궈 차나무를 심고 해마다 봄이 오면 찻잎을 따서 차를 덖는 향기로운 벗을 찾아갑니다. 지리산 야생 차나무에서 따는 차를 작설(雀舌)이라 합니다. 차나무의 어린 새싹이 마치 참새의 혓바닥을 닮아 작설입니다. 봄을 기다려 몸을 푸는 지리산 골짝에서 참새가 재잘거리는 착한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벗의 얼굴에 아직 잔설이 남은 듯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로 차나무들이 얼어 곡우 전에 만드는 우전 햇차 마시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어쩌면 5월이 되어서야 햇차를 마실 수 있겠다고 걱정입니다. 차밭을 둘러보니 지금쯤 푸른빛을 띠고 있어야 할 찻잎들이 얼어 누렇게 변해버려 모습에 마음이 쓰립니다. 차를 덖는 일을 ‘놀이’라며 그 차를 좋은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벗의 봄은 아마 천천히 올려나 봅니다. 지리산에 뿌리를 둔 것 중에 사람이든 꽃이든 아프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리산에 가계(家系)의 상처를 묻고 살아온 벗이기에 또 묵묵히 세월을 묻고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꽃을 기다릴 것입니다. ‘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고 벗은 노래했으니 또 한 번의 통곡, 또 한 번의 눈물, 또 한 번의 신음이 끝나면 꽃이 필 것입니다. 그 꽃, 참 향기로울 것입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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