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못 봤는데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서울시 120다산콜센터에서 영어상담원으로 일하는 천성희씨에게 어느 날 통역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됐다 귀국한 아들을 만난 부모가 한국어를 못하는 아들과 나누는 대화였다. 온 가족이 모여 전화를 돌려가며 "내가 네 이모야" "내가 삼촌이야"라며 인사를 나눴다. 청년은 쑥스러운 듯"Thank you"를 연발했다.
몽골어 상담을 맡은 마그네바야르씨는 체불 임금을 요청하는 몽골 출신 노동자와 업체 사장 간 통역을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마그네바야르씨는 "지금은 상황이 어려우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사장님도 있지만 어떤 분은 통역을 맡은 저한테 화를 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바로 해결을 못하는데 그럴 때면'고향 노동자'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지원센터를 안내해 준다. 그녀는 2006년 한국인 남편을 만난 결혼 이민자다.
서울시는 다산콜센터 외국어 상담 1년 만에 6만 건의 상담서비스를 했다고 23일 밝혔다. 다산콜센터는 지난해 2월 24일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등 5개 외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년 간 언어별 상담 건수는 몽골어가 1만3,523건으로 최다이고, 영어가 1만3,271건으로 두 번째다. 이어 베트남어 7,560건, 중국어 5,193건, 일본어 3,166건 순이다.
언어별 서비스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서울살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영어서비스의 경우 관광객보다 한국 체류자로부터 전화가 많이 오는데 식당 정보, 컴퓨터 수리 등 생활관련 요청이 많은 편이다. 독일인이나 프랑스인 등 비영어권 외국인들도 종종 영어서비스를 이용한다. 일본어로 들어오는 상담 요청 중엔 택시통역 등 관광 관련 문의가 많다. 서울에 사는 일본인들이 관청에서 서류를 작성하거나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 도움을 구하는 일도 종종 있다.
중국어의 경우 생활 상담이나 결혼이민자 통역이 주를 이룬다. 중국어 상담원인 김정애씨는 부부싸움 통역을 한 적도 있다. 중국에서 시집 온 부인과 다투던 남편이 통역을 요청했다. 부인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친구를 집에 데려온 게 불만이었다. 통역을 맡은 김씨는 "일이 잘 안 풀려 업무상 만나야 하는 사람인데 곧 보내겠다"는 남편의 해명을 전했다. 베트남, 몽골어서비스는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자주 이용하며, 노동법과 출입국관리에 대한 문의가 많다.
5개 외국어 전체 상담 내용 중엔 대중교통 안내, 택시 통역 등 교통분야가 18%로 가장 많았다. 행정정보나 식당을 물어보는 생활정보가 17%, 일상적인 통역을 요청하는 생활통역이 13%였다. 노동법률(9%), 관광(6%), 의료(3%) 관련 문의가 뒤를 이었다. 120다산콜센터 외국어상담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연중무휴로 운영한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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