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뤄졌다.
중소 협력업체들에 대한 대기업의 상생 노력과 실적을 점수화해 평가하는 동반성장지수의 발표는 내년 상반기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정운찬 전 총리)의 '동반성장지수 추진 계획'에 따르면 위원회는 이르면 내년 2월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서 올해부터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더군다나 동반성장지수는 당초 기업호민관실에서 지난해 하반기 '호민인덱스'란 이름으로 발표하려 했으나, 지식경제부가 제동을 걸면서 올해로 연기된 것이다. 동반성장지수로 일원화해 발표하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 논리였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이민화 기업호민관이 독립성 훼손과 외압을 이유로 중도 사퇴, 파문이 일었다. 이후 재계에선 올해 하반기도 이르다며 아예 내년으로 미뤄줄 것을 요청해왔었다. 결국 재계쪽 입장이 수렴된 것이다.
내년에도 언제 발표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위원회는 7~9월 중소기업 체감도 평가를 한 뒤 내년 3월까지 대기업 실적 평가와 중기 체감도 2차 평가를 한 뒤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의 동반성장 이행 노력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실적 평가와 중소기업들의 체감도에 대한 동반성장위원회의 2차례 평가를 합쳐서 산출된다. 그러나 내년은 정치적 이슈가 많은 해이기도 하다.
평가 결과를 완전히 공개할 지가 결정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기업들은 동반성장지수가 완전 공개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기업 줄 세우기'이자 '사실상의 규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동반성장지수의 근본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공개하지도 않을 지수를 조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각 기업별 점수가 발표되지 않을 경우 동반성장지수가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정 위원장은 이날 평가 결과 발표 형식과 관련, "동반성장 지수를 어떻게 서열화해 발표할 지는 발표 시점에 가서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피해갔다.
이날 '동반성장지수 추진 계획'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반응은 엇갈렸다. 양측은 상생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향후 평가 결과 공개 방식 등을 두곤 첨예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협약내용 이행도에 큰 비중을 둔 점과 체감도 평가 등을 포함한 점, 1·2차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수요 중소기업까지 고려한 점 등을 봤을 때 중소기업계의 요구가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동반성장지수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수 산정과 발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의 기업별 순위 공개는 지양하고, 등급별로 평가한 후 우수 기업의 명단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 위원장이 협력사 이익 공유제를 추진키로 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익이 난 경우 이를 주주나 임직원과 나누는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적지 않다. 또 포스코가 이미 중소 협력업체와 원가절감 노력을 기울여 성과가 생기면 이를 공유하는 성과 공유제(Benefit Sharing)를 시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기업의 이익이 많이 났다고 해서 이를 다른 기업과 강제로 나누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장 경제 원리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이익 기여분을 어떻게 계산할 지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너도 나도 이익을 나눌 것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기업으로서는 곤혹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해당 기업 주주 및 임직원의 이해와도 배치된다. 재계 관계자는 "민간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인데 최근 움직임은 너무 강제하는 분위기"라며 "무엇보다 상식에서 벗어나선 안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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