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만 여겨졌던 길상사(吉祥寺)에 속세의 탁한 먼지 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법정 스님의 상좌로 주지를 맡고 있던 덕현 스님이 그 바람에 괴로워하다 지난 일요일(20일)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정확한 속사정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시민모임인 '사단법인 맑고 항기롭게'의 이사장 자리까지 내놓을 결심을 하고 산문을 떠나면서 그가 남긴 글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동안 적잖은 갈등과 번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길상사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덕현 스님은 자신을 괴롭힌 것은"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야망과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성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我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설령 법정 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유가 세간의 추측처럼 법정 스님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 사이의 자리 다툼이든, 종교적 구도를 강조하는 덕현 스님과 시민봉사단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사들의'맑고 향기롭게'운영방향에 대한 마찰이든, 법정 스님이 떠난 지 1년도 안 돼 파열음이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길상사가 어떤 곳인가. 종교적 색채를 떠나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무소유의 실천을 일깨워주는 상징적 공간이 아닌가.
1,000억원의 재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불교도량으로 내놓은 고마운 한 불자(김영한)와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열반해서는 관도 없이 몸을 몽땅 태우고 말 빚조차 두려워 자신의 저서를 모두 절판하라고 당부한 법정 스님을 생각해서라도 길상사가 이런 세속에 오염되어가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28일엔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 1주기 추모법회가 열린다. "그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고 1년 전에 신신당부했던 법정 스님의 유언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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