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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어색한 '국익과 보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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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어색한 '국익과 보도' 논쟁

입력
2011.0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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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을 좇아 를 읽어본 이들 중 상당수는 성에 안 차는 결론에 실망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사례의 극단적 확장을 통해, 다수 이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자유선택을 앞세우는 자유지상주의가 모두 한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곤 미덕, 공동선 등의 도덕철학적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 비교에서 치밀한 논리적 전개에 매혹됐던 이들은 돌연 논리가 끊긴 공자님 말씀 같은 결론에 당혹해진다. 그럼 정의, 즉 공동선은 어떻게 판단하는가에서 길을 잃는다. 샌델도 어쩔 수 없다. 복잡다기한 현실에선 애당초 사안마다 명확한 판단기준이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평소 저마다 옳다고 믿는 판단이나 가치들이 사실은 틀린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사고의 확장을 통해 얻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다. 모든 진실은 상대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겸허한 인식이다.

사안별로 고민할 수밖에 없어

다소 현학적으로 말을 꺼낸 이유는 최근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침입사건을 계기로 국익과 진실추구 논쟁이 다시 표면화한 때문이다. 이는 확장하면 국가와 개인 관계까지 아우르는 철학적 논쟁이 된다. 현실적으로도 국가의 이익과 손해를 정확히 계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공허한 논의가 된다. 해외를 봐도 구미언론이 대개 진실 추구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일본 등지에선 국익 쪽을 중시하므로 이 또한 갖다 쓰는 쪽 마음대로다.

국익과 진실추구간 충돌의 대표 사례가 사건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명분이 된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됐다는 국방부 기밀문서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이 보도한 사건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언론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기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판결, 진실추구 쪽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같은 폭로이되 위키리크스 사건에서 외교전문을 무더기로 빼낸 미군병사 매닝은 기밀유출자로 매도돼 사법처리됐다. 또 언론의 비판보도가 베트남전 패배의 원인이라고 믿는 미군은 이후 걸프전 등에서는 보도권보다는 군사적 성공에 우선한 통제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언론들도 대체로 이를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논의의 결론은 역시 허망하다. 사안별로 경중을 가려 일반적 상식 선에서 보도수준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확실히 국가안보 측면에서 보호했어야 할 정보들이 상당수 공개됐다. 상세한 작전개념과 매우 구체적인 무기 배치, 장비수준까지 모든 국민이 알아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아덴만작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으론 이번 국정원의 서툰 짓거리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는 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못에 대한 지적은 물론 필요하되 사안의 크기와 국가적 협상이 걸린 안팎의 사정, 국가간 일상적 첩보활동 등에 비춰 일반 화제성 형사사건을 좇듯이 연일 시시콜콜 대서특필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국민에 대한 불법 부당한 권력 남용이나, 용납 못할 악의적 동기가 개입된 것도 아닌 바에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언론풍토

이쯤에서 정작 말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품격 있게 고심하는 척 했지만 사실 우리 언론의 일반적 보도행태는 국익과 진실추구 간 균형을 저울질하는 본질적 고민과는 대체로 거리가 멀다. 걸리면 터뜨리고, 터지면 뒤질세라 확전하는 식이다. 번번이 판단 전에 저지르고 보는 이 체질을 강준만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한국언론이 국익에 아랑곳 않는 것은) 진실 추구라기보다는 원래 뭐 하나만 터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뻥튀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국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가치 해체와 혼란의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 정말 여러 부문에서 사회의 건강한 가치를 세우는 일이 필요한 지금, 여전히 이기(利己)와 경박(輕薄)이 두드러지는 언론풍토를 보면서 이래저래 심란해진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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