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비행기 안에서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흡연자들이 건물 밖으로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정해진 곳이 아니면 흡연하기 힘들게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천변이 금연구역으로 정해지고, 내년에는 서울시내 버스정류장과 근린공원에서도 흡연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제 간접흡연도 ‘공공의 적’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강력한 금연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12년간 끌어온 담배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이 ‘폐암 발병원인은 흡연’이라고 주장하는 환자와 가족 등 30명이 국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인정해, 앞으로 흡연자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담배를 피운 까닭에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외국 사례처럼 폐암 환자 측이 승소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 폐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며 폐암의 발병 원인이 모두 흡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폐암 환자 중 5~15%는 일생 동안 담배를 피운 적이 없으나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법원의 판결처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2분법적으로 따질 수는 없다. 문제는 폐암이 실제 흡연과 관련된 경우가 80% 이상이며, 한국인 남녀 공히 암 사망원인 1위이기 때문이다. 개개인 폐암 환자의 발병 원인이 흡연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여전히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견이 없다.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려면 미래 노후자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젊을 때부터 금연을 통한 건강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중년 남성이 흡연하는 경우 평균 수명이 10년 가량 단축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흡연으로 생기는 각종 질병으로 인한 병원비 지출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경제적으로 더 궁핍하게 만든다.
이제 흡연은 단순한 기호 습관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하나 재발을 잘 하는 ‘만성질환’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하에 정부가 금연 치료를 의료보험권 안으로 포함시키고 금연과 흡연 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의 상당 부분을 폐암 치료와 예방에 사용해야 한다.
아울러 담배회사는 이번 판결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생과 나눔 경영을 통해 기부의 바람직한 선진국형 모델을 제시하여 국민의 건강과 공익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사회적 합의와 조화 속에서 함께할 때 가능하다.
전상훈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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