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붉은 금(red gold)'으로 불릴 정도로 가격에 날개를 단 구리. 지난해 6월 톤당 6,000달러이던 국제시장 가격이 최근엔 1만달러를 넘볼 정도다. 따라서 투기 세력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품목 중 하나가 됐다.
#. 지난달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식품가격지수 231포인트.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했던 2008년 9월 수준을 넘는 역대 최고치다. 곡물가격 급등이 주범인데, 그 중 밀과 옥수수, 대두 등 3대 곡물의 가격 상승폭이 특히 두드러진다.
국제사회에서 원자재 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국제 곡물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자, 정부가'비축 물량 확대' 카드를 빼어 들었다. 비축ㆍ저장에 드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원자재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 특히 그동안 쌀만 쌓아오던 농산물 비축 정책도 바꿔 다른 곡물도 목표치를 설정해 저장량을 늘리기로 했다.
광물ㆍ희소금속 비축 확대
조달청은 23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구리의 목표 재고량을 현재 60일분에서 80일분으로 늘리는 내용의 '원자재 비축 목표량 차등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원자재 비축 목표량은 품목에 상관없이 60일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품목별로 비축 목표를 탄력 조정키로 것이다.
구리의 경우 공급 장애를 빚을 가능성이 높고 중소기업의 수요 비중이 큰 품목이어서 비축 목표가 확대되는 품목에 포함됐다. 주석도 비축목표량이 75일분으로, 희소금속인 코발트와 비스무스의 목표량도 80일분으로 늘었다. 대신 공급선이 다양해진 알루미늄 비축량은 40일분으로 축소됐다. 조달청 관계자는 "가격 급등 품목은 올해부터 비축을 늘리고, 다른 품목도 전반적으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재고를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쌀 일변도 비축정책 탈피
곡물 비축정책도 바뀐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이날 식량용 곡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을 비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쌀만 60일분(연간 수요량의 17%)을 비축하고, 다른 곡물은 비축하지 않고 있다.
FAO는 60일분을 비축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농림부는 구매여력을 감안해 일단 각각의 곡물에 대해 45일분을 비축 목표치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밀은 25만톤, 옥수수와 콩은 각각 25만톤과 5만톤을 비축해야 한다.
구제역 백신 모자라 애먹기도
정부가 목표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지만, 석유류의 비축량 확대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정부와 민간보유량을 합해 73일분의 석유류(원유 및 제품 포함)가 비축되어 있는데, 국제유가 고공행진이 계속되는 만큼 추가로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종플루와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전염병 창궐이 잇따르면서 백신이나 치료제의 비축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에는 정부가 비축한 구제역 백신(30만두분)만으로는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해 있던 재외공관을 통해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비축 백신을 요청하는 등 비상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정부 비축의 효과는
정부가 원자재ㆍ곡물 등의 비축량을 늘리려는 이유는 이들 품목의 가격 변동성이 갈수록 커져 최악의 경우 국내 수급을 위협하는 상황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급 전망이 안정적이고 우리나라가 대외적으로 우월한 구매력(buying power)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때그때 수입해서 쓰는 것이 좋지만, 알루미늄 등 소수를 제외한 상당수 광물ㆍ금속시장은 생산자가 가격을 주도하고 있다.
또 가격이 오르면 공급도 뒤따라 늘어나는 공산품과는 달리, 특성상 바로 공급량을 늘릴 수 없는 곡물ㆍ원자재시장에서는 '공급부족-가격상승'의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비축물량 밖에는 없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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