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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7> 세시봉 친구들 3인방 부산 콘서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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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7> 세시봉 친구들 3인방 부산 콘서트 현장

입력
2011.02.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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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차에 올라탔다. 무모한 일이었다. 범인(凡人)의 잣대로 이해하기 힘든 코드 아닌가. 얘기가 잘 될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냥 저지를 수밖에. 차에 오르자마자 요즘 인기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는데 “인기 가수의 길을 걷는 건 싫습니다. 노래 부르는 데 의의가 있는 거지. 아, 돈 버는 게 얼마나 나쁜 건데요”라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꾸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연습할 시간을 뺏겨 골치 아프단다. 좋다는 얘기는 절대 안 했다. 송창식답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딱 두 번 출연해 그저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지낸 세월을 얘기했을 뿐인데 충격은 컸다. 감동은 중ㆍ장년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전달됐다. 세시봉 3인방 송창식(64) 윤형주(64) 김세환(63) 얘기다. 전성기 때처럼 전국 순회 콘서트를 다니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예매사이트에서도 티켓파워를 톡톡히 발휘 중이다. 아이돌만 판치는 가요계에서 세대 간의 소통을 가능케 한 키워드로 떠오르며 선 굵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세시봉 3인방의 18, 19일 부산 콘서트를 따라 나섰다. 큰형 조영남(66)은 내달 세종문화회관 단독 공연을 준비 중이라 함께하지 않았다.

인기는 독약이다

송창식은 코드만큼이나 하루 일과도 독특하다. 오후 2시께 일어나 제자리 빙빙 돌기를 2시간쯤 해 최적의 컨디션을 만든 후 3시간쯤 연습한다. 그리곤 보통 6, 7시께 집에서 나서 경기 구리시에 위치한 연습실로 출근해 다시 새벽까지 맹연습을 한다. 초저녁에 공연하려면 남들보다 하루 전에 출발해야 한다.

17일 오후 6시께 ‘수상가옥’이라 이름 붙은 경기 광주시 퇴촌면 그의 집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경호 업체에서 나온 이가 낡은 벤츠의 운전을 맡았고 송창식은 바로 조수석에 타 버렸다. 뒷자리에 함께 앉고 싶었지만 더 꾸물거리다가는 떼 놓고 갈 것 같아 냉큼 혼자 뒷자리에 탔다. 어쩐지 이상한 구도다.

노래의 완벽성 추구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는 그에게 요즘 가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었다. 그는 “지금 가수가 훨씬 잘합니다. 옛날 가수들은 음정 박자가 다 안 맞아요. 그걸 한국식으로 그냥 정감 있다고 포장하는 거지”라고 했다. 국민가수라고 불리는 유명 가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엉터리라고 혹평했다.

“나는 가수가 아니라 음악가”라고 스스로 칭할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는 1973년부터 하루도 안 빼고 박자와 음정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연습할수록 계속 할 게 생긴다”는 것이다.

공연이 늘어 수입이 늘었겠다고 하자 “1년에 보통 10~12회 공연을 해서 5,000만~1억2,000만원의 수입을 올렸어요. 이것도 너무 많아요. 공연이 두 배가 됐으니 두 배는 벌 텐데 세금 처리하는 일로 골치만 아프게 됐죠.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게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데”라며 짐짓 심각한 표정이다.

그는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일정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부산에서 팬클럽 회원들이 모여 기다린다며 잠깐만 들러 달라는 방송사의 요청을 “일정에 없는 데는 못 간다”고 야멸차게 거절했다. 이런 그가 이날 OK한 것이 있었다. 바로 울산 봉계 한우단지에 있는 단골집으로 고기 먹으러 오라는 지인의 전화였다.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는 그는 “3시께 먹었으니 아직 먹을 때가 안됐는데. 이야, 어쩌지”하고 잠시 갈등하더니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결국 응했다.

식당에 들어서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온천에서 막 나온 듯 뽀얀 피부에 주름도 거의 없다. 도저히 60대라고 볼 수 없는 피부다. 그런데도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한국 나이로 예순다섯이 되면서 자꾸 여기에 주름이 지네요”라며 입가의 팔자 주름을 손으로 가리켰다. 동석한 그의 지인은 “야행성이라 햇빛을 안 보고 살아 안 늙어요. 자전거 마니아 세환이 형은 셋 중 막내지만 맨날 해를 보고 살아 주름이 자글자글 하잖아요”라며 껄껄 웃었다.

중간에 밥을 먹은 탓에 부산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무대감독과 선 채로 한참 얘기를 나눴다. 새로 들였다는 음향기기가 잘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다. 기계를 다루는 데 뛰어나 엔간한 엔지니어보다 낫다는 게 세시봉 콘서트 공연기획사 WS의 하우성 대표의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스태프들과 함께 방으로 또 올라가 커피 한잔을 했다. 팬들의 간절한 마음을 거절하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언뜻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송창식은 “팬들을 만나서 기분이 너무 좋아지면 다음 날 공연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을 흐트러트리는 일은 피합니다”고 말했다. 진정 프로의 모습이다.

나이 든 장난꾸러기들

18일 콘서트 당일 오후 부산KBS홀. 스태프들이 무대와 대기실을 분주하게 오갔다. 리허설을 마친 밴드들은 대기실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50)도 보였다.

리허설이 예정된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 청바지에 빨간색 폴라폴리스점퍼를 입은 ‘젊은 오빠’ 김세환이 나타났다. 코미디언 서영춘의 말투로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고 하며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환갑이 넘었어도 안에 받쳐 입은 후드티셔츠가 참 잘 어울렸다. “송창식 윤형주랑은 달라요. 꼰대 취급 하지마”라며 윙크를 날렸다. “그나저나 어떻게 창식이 형 차를 탔어. 그런 적이 없는데, 아주 특종이네”라고 덧붙였다. 무대에 서 팝송 메들리를 부르며 다리를 흔들흔들, 리허설도 신나게 했다. 화려한 조명까지 받으니 정말 나이를 믿을 수 없게 생동감이 넘쳤다.

좀 있으니 기타가 한 대가 또 들어온다. 통기타 가수들이라 일단 기타가 먼저고 그 다음이 사람 입장이다. 윤형주다. 김세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셨습니까”라고 깍듯이 형님을 맞았다. 윤형주는 방송에서 보여진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이미지처럼 김세환을 본체만체하고 짐을 풀었다. 카리스마가 넘쳤다. 둘을 보는 주위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김세환이 기자에게 슬쩍 다가와 “9개월 차이밖에 안 난다니깐”이라고 귀띔하고 갔다.

사회자 이상벽(64)과 이날 초대 손님으로 섭외된 트윈폴리오의 원년멤버 이익균(64)은 5시가 좀 넘어 왔다. 사업에 봉사활동까지 스케줄이 빡빡한 윤형주는 잠깐 리허설을 마치고 내내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말 붙일 새도 없이 미용실에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5시 반쯤 되니 송창식이 도착했다. 바로 무대에 올라 전날 그렇게 신경을 쓰던 마이크와 앰프를 체크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 “마이크 소리는 좋네” 하더니 “한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라고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그러고도 ‘아, 아, 아’ 소리를 내며 마이크테스트를 계속했다.

그새 윤형주가 탱글탱글하게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왔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온 송창식을 보고 “네가 이 시간에 리허설을 다 끝내는 일도 있구나. 아주 바람직한 일이야”라고 알은 체를 했다.

7시, 공연 한 시간 전이다. 여느 가수들이라면 신경이 곤두서 있을 시간이지만 모두들 편안한 모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상벽이 “요즘 TV에 나오는 애들은 뻐꾸기 같은 소리만 하는데 그게 재미있나 보지”라고 하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승기가 1박 2일 나간다 만다 인터넷에서 난리던데 은퇴라도 하면 완전히 뒤집어지겠어”(윤형주). “고현정이 함춘호 기타를 듣고 싶다고 트위터에 올렸다던데”(김세환).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주도하며 이슈들을 딱딱 정리하던 이상벽이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게 있냐”며 옆에 쇼파에 앉은 송창식에게 물었다. 며칠 전 세시봉 기사가 실린 신문을 이제서야 읽던 송창식은 “니가 무슨 말을 했는데”라고 되물었다. 유일하게 분장을 한 윤형주는 거울 앞에서 콤팩트를 바르고 있었다.

이제 30분 전, 송창식 윤형주 이익균이 한쪽에서 기타를 튕기며 ‘성자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한 대목을 불렀다. 화음이 환상이었다. 함께 무대 리허설도 한번 안 했는데 딱딱 맞았다. 40년 세월 덕분이다.

형광봉 환호 후끈

어느새 3,000여명의 관객들이 입장해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60대 노신사부터 50대 아주머니들까지 옛 추억을 되짚기 위해 발걸음한 이들은 한껏 들떠 보였다. 한 50대 주부는 “세시봉 노래들은 시적이라 애들이 들어도 좋을 것 같아서 막내딸과 함께 왔어요”라고 했다. 40~60대 관객이 대부분이었지만 TV 보고 감동 먹고 찾았다는 30대 여성 등 젊은 층도 꽤 섞여 있었다.

콘서트의 막이 올랐다. 세시봉의 전속사회자이기도 했던 이상벽이 “오랜만에 노래다운 노래 좀 듣자 고요”하고 한 자락 깔았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 김세환이 상큼한 목소리로 첫 무대를 장식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이어 윤형주가 “수고했어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 가지고”라고 농을 던지고 무대를 펼쳤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0시의 다이얼’에서 명DJ로 이름을 날렸던 입담을 과시하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다가 가늘고 맑은 목소리로 애절하게 ‘비의 나그네’를 불러 단번에 장내 분위기를 바꿨다.

‘한번쯤’ ‘담배가게 아가씨’ 등 송창식의 히트곡들이 나오자 관객들은 형광봉을 흔들었다. 나이가 무색한,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목소리. 엄격한 그의 연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박수와 환호도 시원하게 쏟아졌다. “사실은 이 맛에 가수하는 거에요.” 송창식이 눙쳤다.

이어 송창식 윤형주가 ‘하얀 손수건’ ‘웨딩케?櫻??선사하고 이익균이 나와 멋드러진 저음을 선뵈자 관객들의 눈가엔 촉촉한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CM송의 대부 윤형주가 ‘?繭窄?역시 **껌’ 같은 방송에서는 못 불렀던 상표 이름을 넣은 CM송을 속 시원히 부르자 이번엔 웃음이 터졌다. 세시봉 3인방은 관객들로부터 “같은 시대에 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받자 감격스러워 했다. 노래는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대기실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노래 부르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게 진정한 고수”라는 어떤 가수의 말이 스쳤다.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 가며 기분 좋은 여유를 느끼고 있는 찰나, 팬들이 들이닥쳐 사진을 찍으며 훈훈한 마음을 나눴다. 송창식팬카페 회장이라는 중년 신사도 대기실로 찾아와 송창식과 만날 수 있었다. “한번 보려고 새벽 4시께까지 무작정 기다렸어요”라고 그가 서운함을 토로하지만 그렇다고 아랑곳할 송창식이 아니다. “공연 전날에는 절대 돌발상황을 만들지 않습니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비치지 않았다.

10시를 넘겨 이미 한밤이었지만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공연장 길 건너 고깃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시봉 멤버들을 알아본 중년 남녀가 사인해 달라며 윤형주의 어깨를 짓눌렀다. 맞은 편에 앉은 김세환이 “팬이라는디 할 말 있냐”고 또 서영춘 흉내다. 가수 일 하면서 술을 끊었다는 송창식과 애주가에서 절주가로 돌아선 윤형주는 고기에 열중하고, 김세환만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 날 공연 때문에 못다한 얘기를 접어 뒀지만 그래도 아쉬운 듯 자리는 1시까지 이어졌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세시봉이란

세시봉(C’est si bon)은 1954년 서울 서린동에 문을 연 음악감상실로 64~69년 무교동으로 옮겨 영업을 계속했다. 그 당시 포크 문화를 대변하는 통로로 젊은이들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특히 매주 금요일 열린 ‘대학생의 밤’은 신인 가수 등용문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이 이를 통해 데뷔했다. 송창식 윤형주는 68년 트윈폴리오를 결성,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1년 만에 해체하고 이후 각자 활동했다. 10년 전부터는 빅4(세시봉+양희은) 빅3 세시봉 등 이름을 바꾸며 함께 콘서트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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