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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민경제리포트-그들에겐 봄이 없다] <3> 세입자의 봄: 빚을 낼까 난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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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민경제리포트-그들에겐 봄이 없다] <3> 세입자의 봄: 빚을 낼까 난민이 될까

입력
2011.02.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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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집 마련 꿈 접은지 오래, '전세사수'의 꿈조차 버겁기만…

서울 구로동 85㎡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대리운전 기사 강일만(가명ㆍ44)씨는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1억7,500만원인 보증금을 무려 5,0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사정도 해보고 호소도 해봤지만 집주인은 요지부동. 결국 추가 대출에 친지로부터 빌려 돈을 합쳐 간신히 계약서에 도장은 찍었지만,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내 집 마련은커녕 이젠 전세도 버거워요. 대출이자를 내려면 어떻게든 더 일을 해야겠지만… 뭔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주택보급률 101.2%. 숫자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국민 1인 당 집 한 채씩은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사철을 맞은 지금 서울과 수도권 도시 곳곳에선 천정부지로 치솟은 전세금을 감당치 못해, 눈물 흘리며 싼 곳을 찾아 다니는 '전세난민'들이 떠돌고 있다.

서너 식구 살만한 엔간한 수도권 아파트라 치면, 적어도 3,000만원이고 많게는 억(億)단위까지 보증금이 올랐다. 어지간한 직장인의 연봉 이상을 전셋값으로 올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출뿐. 있는 빚에 빚을 더해 잡거나, 그게 안되면 살던 곳에서 밀려 나와 외곽을 겉도는 난민 신세가 되는 것이다. 작년 말 현재 대한민국 전체 가구 가운데 전세나 월세(반전세로 불리는 보증부 월세 포함)로 사는 가구는 약 40% 수준(670만~680만가구)으로 추산된다.

설령 전세나 월세를 구했다고 끝은 아니다. 보증금 마련을 위해 빌린 대출금의 이자를 내기 위해, 혹은 보증금을 올려주지 못해 대신 선택한 월세를 내기 위해, 고통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월급의 절반 가량이 아이들 학원비로 나가는 현실에서, 또 하나의 고정지출이 생긴다는 것은 곧 '적자'가계부를 의미한다.

경기 평촌에서 보증금 1억500만원에 전세를 살던 회사원 최규원(36)씨는 집주인의 요구로 보증부 월세(이른바 반전세)로 최근 재계약을 했다. 이미 받은 은행대출(2,800만원) 이자 월 9만5,000원 외에 월세 30만원을 더 내야 할 상황. 230만원 월급에 용돈 3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교통ㆍ통신비 30만원, 보험ㆍ이자 25만원, 기타 생활비 100만원 정도를 쓰는데 월세까지 내면 앞으로는 마이너스다. 집계약 1주일 후부터 최씨는 퇴근 후 대리기사로 뛰고 있다. 그는 "올해엔 2세를 가지기로 했는데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가계 사정도 그렇고 계획을 조금 더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세보증금이 계속 오르면 전세수요자들이 아예 집을 구입하는 쪽으로 선회, 전세대란이 어느 정도 잡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책도 매매수요를 촉진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지금 신음하는 '전세난민'들은 주택구입여력이 있는데도 전세에 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달 아파트 전세에서 보증부 월세로 재계약을 한 서울 신길동의 송원이(39ㆍ여)씨는 이제 은행엔 이자로, 집주인에게는 월세로 매달 60만원을 내야 한다. 없던 월세부담이 35만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는 언젠가 번듯한 아파트 하나 갖는 게 소원이잖아요. 그거 하나 보고 저축도 하고 한푼 두푼 쪼개 쓰며 모으는 건데 이젠 정말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사실이 그렇다. 집값은 한참 뛰어 있지, 전셋값은 1년 연봉보다 더 오르지, 여기에다 월세까지 내고 나면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이다. 그나마 전세로 살 때는 올려줘도 언젠간 받을 돈이니 강제로 저축한다고 여긴다지만, 매달 없어지는 월세는 내는 만큼 내 집 마련의 길은 멀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내 집 마련의 꿈'이 아니라 '전세사수의 꿈'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 하우스 푸어의 고통

셋방살이의 설움에서 벗어나면 고민은 끝날까. 내 집 마련의 행복도 잠시. 주택경기 침체와 부동산 거래부진, 높아진 이자부담에 부닥치면서 어렵사리 마련한 내집은 이내 고통스런 악몽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집이 있어도 가난하다는 이른바 '하우스푸어(house-poor)'얘기다.

2007년초 경기 남양주의 85㎡ 짜리 아파트를 3억1,000만원에 샀던 김모(63ㆍ여)씨는 전세 살던 때가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김씨는 "늘그막에 세 사는 설움 없이 살아보려고 샀는데 은행 이자만 55만원 정도 내고 나면 손자 용돈 한번 주기도 빠듯할 정도로 생활이 전보다 못해졌다"며 "집값도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고 팔리지도 않아 차라리 전세나 월세를 놓고 집을 줄여갈까 생각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2006년 12월, 40대 후반의 나이로 서울 천호동 D아파트 85㎡를 계약했던 김철수씨. 당시 자고 나면 수백, 수천만원씩 집값이 오르는 폭등세에 다급해진 김씨는 전세금 뺀 것과 은행 대출 2억원을 더해 3억150만원에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김씨의 행복은 불과 5년을 가지 못했다. 결국 은행빚 부담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최근 경매 통보를 받은 상태. 그는 "서민 입장에서 대출 없이 집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어떻게든 경매를 막아보려고 친지나 선후배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제2금융권에서 대출 3억4,000만원을 받아 용인 상현동 L아파트 84㎡짜리를 4억5,000만원에 샀던 박모(42ㆍ여)씨도 결국 경매로 집을 날린 경우. 매달 빠져야 할 이자만 140만원. 속수무책 떨어지는 집값에 급매처분도 불가능했다. "당시 집값이 하도 올라 지금 사두지 않으면 영영 무주택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무리를 했는데, 그걸 느낀 순간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요."

이영창 기자

■ 전문가들이 본 해법은

전문가들은 전세난의 원인이 집이 없고 돈이 없어 생긴 현상인 만큼 그에 맞는 처방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뭐래도 시급한 것은 주택공급. 전세난도 결국 살 만한 집이 부족해 생긴 현상인 만큼 부족한 곳에서 부족한 부분만큼 채워줘야 한다는 것.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에서 입주까지 2,3년이 걸리는 시차를 감안하면 주택공급만큼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즉각적 효과를 보려면 공공기관의 수도권 다가구주택 매입을 통한 임대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무조건 공급물량확대로는 안되며, 전세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중소형 공급이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전세자금 지원은 '양날의 칼'과도 같아 보다 세심히 접근해야 할 부분. 세입자를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집주인들이 올린 전세보증금의 뒷돈을 대주는 식의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세대출 한도를 올려주면 전세수요가 늘어나 오히려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고 결국 늘어난 빚의 이자부담을 세입자들이 이중으로 지게 된다"며 "저소득층 전월세 지원을 위해 검토됐던 주택바우처제도 역시 집주인 임대소득만 올리는 부작용이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세입자에게 실질 혜택이 갈 수 있는 운영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 신탁제 도입의견도 나온다. 전세는 1970년대 금융기관에서 목돈을 빌려 쓰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자기 집을 남에게 빌려주고 한번에 큰 돈을 끌어다 쓰는 수단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고유의 임대차 방식. 이젠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전세금을 올리거나, 또 저금리에 이자수익이 큰 월세로 급전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인간 금융수단으로 시작된 전세도 제도권 금융의 한 부분으로 흡수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세금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신탁사가 전세금을 운용해 생긴 수익을 집주인과 공유하는 전세금 신탁제도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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