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 무료 이동수단 '무균차' 운행 중단저소득층 환자들 이용… 운영비 부족으로 '정차'"기부의 힘으로 재출발" 환우회서 1004 캠페인
2009년부터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지윤이(9ㆍ가명)의 어머니 최모(40)씨는 요즘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면역력이 떨어진 백혈병 환자의 특성상 세균감염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객이 많은 대중교통 이용은 엄두도 못 내고 매번 집이 있는 충남 태안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서울의 대형병원까지 택시를 대절해 다닌다. 왕복비용이 무려 40만원이다. 출발 전 택시 구석구석에 살균제를 뿌려 소독을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최씨는 "백혈병 환자들이 병원이나 집 문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라는 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사실 최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걱정 없이 딸 아이의 치료를 잘 받아왔다. 일명 클린카로 불리는 백혈병 환자용 무균차량(사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살균정화장치, 제균기 등이 설치된 무균차량은 병원 치료실 수준의 항균 상태를 유지, 아무런 감염걱정이 없다. 하지만 최씨는 올 초 무균차량의 운행을 중단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한국백혈병환우회(이하 환우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무균차량을 지원받아 운행해왔지만 연 4,000만원에 달하는 차량 운영비 부족으로 운행중단을 한 것이다. 지금껏 자선경매, 기업체 후원 등으로 운영비를 조달해오다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 유용 등 비리의혹이 불거지면서 덩달아 환우회에 대한 기부가 주춤해진 탓이다. 환우회 이은영 사회복지사는 "차량이 한대밖에 없어 넘쳐나는 신청자들을 다 받아주지 못했다. 이제 그 한 대마저도 달릴 수 없다니 착잡한 마음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간 조혈모세포이식 수술 후 퇴원하거나 지방에서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동하는 환자 중 자가용이 없는 저소득층 환자 100여명이 무균차량 이용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들에게 운행중단의 충격은 크다. 실제로 지방환자 가운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2차 감염이 된 사례는 숱하게 많다. 항암치료를 위해 1년 전부터 전남 순천에서 기차로 이동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다녔다는 권모(50)씨는 탁한 공기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큰 일이 날뻔한 일도 있었다. 권씨는 "병원에선 폐에 구멍이 났다며 다시 입원을 권하더라"면서 무균차량의 운행중단을 아쉬워했다.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유영진 교수는 "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후 백혈병 환자들은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며 "미세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상당수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무균차량은 감염예방 효과뿐 아니라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던 터였다. 환자들이 함께 동승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면서 투병의지를 키워왔고 자연스럽게 투병기나 복지문제 등 정보공유의 장으로도 활용됐다.
환우회(문의 1688-5640(www.ham ggae.net)는 운행중단으로 인한 백혈병 환자들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어 22일 무균차량의 재운행을 위해 소액기부자 1004명을 모집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2004년부터 백혈병을 앓았던 박진석(39) 환우회 사무국장은 "무균차량은 환자들에게 단순한 차량이 아니라 희망과 같은 존재"라면서 "어떻게든 다시 움직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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