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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린 북의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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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린 북의 파산

입력
2011.02.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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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일 리비아 청년장교 그룹인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신병 치료 차 터키 휴양지에 요양 중인 틈을 노렸다. 아랍세계에 거세게 불던 아랍민족주의에 냉담하고 부패한 국왕에 대해 리비아인들의 반감이 커가던 때여서 손쉽게 무혈혁명에 성공했다. 주동자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범아랍주의 열렬 추종자인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위.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권력을 장악한 그는 외국 석유회사들을 추방한 뒤 석유국유화를 단행하고, 반서방ㆍ반미 노선을 내걸어 미군기지를 철수시켰다.

■ 이슬람사회주의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등에 영향을 받은 카다피는 정치ㆍ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조직화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자신이 직접 쓴 이 설계도였다. 1976~78에 세 권으로 출판된 이 책은 카다피식 이상국가에 관한 정치사상서다. 서구식 의회와 정당을 부정하고 대중 직접민주주의, 완전 평등주의, 임금노동 폐지를 주장하며, 샤리아에 기초한 이슬람사회주의 국가를 이상국가로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에 입각한 정치ㆍ사회 재조직화의 결과는 주체사상의 북한 체제만큼이나 기괴한 카다피 1인 독재체제였다.

■ 2000년대 들어 카다피 체제의 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과거 테러지원 행위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핵무기와 다른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과는 물론 철천지 원수 사이였던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회복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겁먹은 측면도 있지만 유럽에서 교육을 받은 둘째 아들 자이프 알 이슬람의 역할이 컸다. 카다피 리비아의 변신은 국제적 고립 속에 WMD를 추구하는 불량국가, 특히 북한 김정일 체제가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로 칭송 받기도 했다.

■ 그러나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게 얘기의 끝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42년이나 군림해온 카다피의 독선적 체제가 바뀌지 않고서는 빈곤과 부패 등 리비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혁명영웅이라도 독선과 아집으로 장기집권을 하면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다는 사실에는 예외가 없다. 카다피가 청년 시절 가슴에 품었던 이상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당장 살육을 멈추고 권좌에서 물러나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력이 리비아를 재건할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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