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일본인들을 흠칫 놀라 다시 볼 때가 있는데, 우쓰노미야 켄지(宇都宮健兒)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도 그런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도쿄대 법학과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애초부터 재야 변호사로 출발해 1971년 이래 사금융 피해구제와 고금리 인하운동의 한 우물을 파왔다.
골치 아프고 돈도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 성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2005년부터는 민주노동당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고금리 사금융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국경 넘은 사회적 금융 감시
그가 최근 다시 방한해 "일본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 고료회가 한국 사채시장에 진출했으니 국가간 협조를 통해 막아야 한다"며 일본 조폭자금의 한국 활동을 경고했다. 국내 범죄자금이 베트남에 사채로 흘러 들어갔다면, 우리는 우쓰노미야 회장처럼 할 수 있을까?
우쓰노미야 회장이 주목되는 건 이웃나라의 사금융 피해 서민에 대한 국적을 초월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고금리 대출을 규제하는 법률은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법이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법"이라고 주장했다. 직접적으로는 고금리 사금융 문제를 두고 한 얘기지만, 시장논리가 아무리 만연해도 금융엔 여전히 사회적 감시와 통제가 절실하다는 기본 인식이 오히려 큰 울림을 낳는다.
사실 요즘의 금융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면 사회정의를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부문이 비단 고금리 사금융에 국한된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정부의 금융정책에서도 개인과 가계는 늘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뒷전에 밀리게 마련이었다.
실제로 친기업, 성장 우선의 '747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들어 환율정책은 기업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고환율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둬왔다.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수출산업의 경우 원ㆍ달러 환율 100원의 높낮이로 1조원대의 영업익이 오갈 정도니 기업으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개인과 가계는 수입물가 인플레이션의 부담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금리정책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래 지속된 저금리정책은 국제적 동반 금리인하 움직임에 동참한 것이고, 경기 회복을 겨냥한 거시정책의 일환이었을 뿐이지 주택 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건 아니었다. 은행이 저금리 대출세일을 하고, 가계가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산 건 부수적 효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세를 타는 듯하고 기업창고에 이익금이 넘치자, 금리정책은 인상 쪽으로 완연히 기울어 결국 여윳돈은커녕 부채만 잔뜩 짊어진 가계만 금리 인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겪게 됐다.
물론 금융정책 효과의 득실을 따지는 데 각 가계와 기업의 이익을 반드시 대립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넘쳐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듯,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같은 '선도부문'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낙후부문'인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효과도 없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용어가 일반화할 정도로 그런 효과가 줄어든 게 현실인 만큼 금융정책의 정당성도 새로운 시각에서 따져 볼 여지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이 금리 적정성 따져야
금융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부문은 가계부채 쪽이다. 돈이 넉넉해진 대기업과 달리, 800조원이 넘는 부채를 끼고 있는 가계, 특히 그 동안 대출 끼고 집 산 대부분의 중산ㆍ서민 가계는 당장 꼼짝 없이 대출금 이자폭탄을 맞게 됐다. 하지만 금융위건 공정위건 요즘엔 은행 금리의 적정성조차 거의 따지고 있지 않다.
정부가 금융감독을 한다 해도, 이젠 정부의 금융감독이 적절한지 국회가 나서서 일상적으로 따져야 할 때가 됐다. 우쓰노미야씨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난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 야권통합이니 보편적 복지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 대신, 다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은행금리 문제부터 따져 보라고 하지 않을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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