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00명 정도의 탈북자 자녀들이 입국합니다. 그런데 형편도 어렵도, 정서도 안 맞아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있죠. 더욱이 사교육을 받지 못해 공교육까지 못 따라가는 실정입니다.”
오는 25일 문을 여는 탈북자 자녀들의 대안학교 ‘삼흥학교’ 초대 교장을 맡은 채경희(40)씨는 22일 “탈북자 자녀들이 통일시대를 대비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 됐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학교 과정 이상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는 있지만, 초등생 대상은 이 학교가 처음이다. 채 교장 역시 함경북도 청진에서 8년간 교사생활을 하다 2003년 말 한국에 온 탈북자이다.
채 교장이 이 학교를 맡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권유 때문이었다. 채씨가 소속된 탈북단체 NK지식인연대 회원들은 지난해 중순 대안학교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회원들의 모금을 통해 서울 구로동에 교실 7개와 식당을 갖춘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명예교장으로 황 전 비서를 추대했다. “황 전 비서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저한테 교장을 맡아달라고 하시더군요. ‘탈북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냐’고 말씀하시면서요.” 채 교장은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며 “탈북자 아이들의 문제가 곧 내 자식과 내 이웃, 내 동료들의 문제여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채 교장의 원래 꿈은 학자였다. 그래서 한국에 온 뒤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이 학교는 지난해 11월 시범 운영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학생 수가 3명에 불과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30명으로 늘어났다. 오전에는 해당화ㆍ아름ㆍ모란반으로 나눠 한국의 초등과정 교육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보충교육과 음악 외국어 등 특성화 교육을 실시한다.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은 학교 인근 30평 규모의 아파트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채 교장을 포함한 4명의 탈북 교사들도 이 곳에서 살고 있다. 채 교장은 “탈북자들이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학교를 기숙형으로 만들었다”며 “입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에는 다문화 및 저소득층 가정에서도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전액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수업료나 숙식비를 받지 않는다.
채 교장은 “탈북자 2세들의 교육은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울 교동초등학교가 입학생이 적어 폐교 위기를 맞는 저출산 시대에 탈북자 2세들은 무한한 잠재력이 될 수 있습니다. 삼흥(三興)이라는 학교 이름도 지(智) 덕(德) 체(體)가 흥해 통일의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죠. 정부도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으면 해요.” 채 교장은 국민들의 시각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탈북자가 이미 2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다면 통일이 됐을 때 2,000만~3,000만 명에 이를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국민들이 보다 따뜻한 시각으로 탈북자들과 그 자녀들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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