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장군이란 용기가 있었다. 작게 만들어 간장을 담기도 했지만 주로 크게 만들어 오줌 용기로 썼다. 좌우로 길고 가운데 깔때기 주둥이가 달린 남성용 소변기다. 거기 모아 삭힌 오줌은 거름으로 썼다. 어른들 말처럼 남의 집에 함부로 버리기 아까운 비료였다. 큰 것을 담았던 장독은 봄이면 말끔히 비워져 들에는 자연의 냄새가 넘쳤다. 그 가운데서도 채광과 통풍이 뛰어났던 데다 수시로 풀과 짚과 재를 뿌려 분뇨와 고루 섞이게 했던 절간 해우소(解憂所)는 특급 비료 공장이었다. 질소와 인산, 칼륨을 고루 갖춘 훌륭한 퇴비를 생산했다.
■ 양계장과 과수원을 같이 한 먼 친척의 사과는 별나게 달았다. 계분(鷄糞), 즉 닭똥이 주된 비결이었다. 조류의 분뇨가 과일의 당도를 놀랍게 끌어올린다는 사실은 나중에 일본에서 확인했다. 이바라키(茨城) 현이 '거봉' 포도의 명산지가 된 데는 특별한 비료가 있었다. 필리핀 현지의 만년 동굴에 쌓인 박쥐 분뇨와 그것이 굳어진 암석을 파올리는 공장이 있었다.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만이 아니었다. 동식물의 모든 주검은 좋은 비료였다. '4ㆍ3 사건'을 그린 현기영의 은 '그 해 고구마는 유난히 굵었다'고 썼다.
■ 구제역 매몰 가축의 침출수를 퇴비로 활용하자는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주장이 이런 기억을 일깨웠다. 가축이 부패한 침출수는 분명 고단백 유기질이어서, 오줌 한 방울 똥 한 덩어리가 소중했던 옛 눈길로는 백번 옳다. 그러나 책상물림이라면 몰라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까지 지낸 정 최고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많이 틀렸다. 어떤 물질이 환경재앙인지 유용한 자원인지는 그 성분이 아니라 밀도와 현실적 처리능력, 경제성에 달렸다. 봄이면 논밭에 널렸던 옛 분뇨와 분뇨처리장이나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치는 요즘 분뇨는 크게 다르다.
■ 사람 분뇨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걸러지고, 찌꺼기는 하수 슬러지와 같이 처리된다. 가축분뇨는 2009년 기준으로 전체 4,370만톤 가운데 3,474만톤이 퇴비로 바뀌었지만 어디까지나 통계 수치다. 수도권 식수원인 팔당댐의 총인(TP) 밀도를 높이는 주범은 여전히 축산 오ㆍ폐수다. 매몰 가축의 침출수에 앞서 축산 오ㆍ폐수의 완벽 처리가 시급한 실정이고, 정 최고위원은 과거 그 주무 장관이었다. 다만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 투자와 노력을 통해 모든 오염물질을 얼마든지 자원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만은 따로 챙겨두어도 좋을 성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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